요한계시록 강해 - 2 [계 1:9-19]
>> 9절
* 밧모라 하는 섬
밧모섬은 사도요한에게 있어서 예수 고난에 동참하는 마지막 종착지였다.
고난은 끝이 있다.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는 것이 고난의 시작점이라면 밧모섬은 종착지다.
밧모섬에 있다는 것은 혼자가 됨을 의미한다.
밧모섬은 범죄자들이 유배되는 곳이기에 의로운 사도요한은 밧모섬에서 영적으로뿐 아니라 육적으로도 혼자가 되었다.
이러한 고난의 종착지에서 사도요한은 최고의 영계 축복을 받게되었다.
우리에게도 고난의 종착지가 있는데, 이는 영적으로 혼자가 되는 것이다.
영적으로 혼자가 되었다면 사도요한이 겪었던 밧모섬이다.
혼자가 됨은 땅의 길이 막힌것이다.
땅의 길이 막히면 극심한 고난이 동반되지만 하나님의 큰 역사로 하늘의 길이 열린다.
땅의 길이 막힐때 하늘의 길이 열리며, 하늘의 길이 열릴때, 땅의 길 또한 열린다.
땅의 길이 막히면 땅에서 길을 찾지 말고, 하늘을 바라보라.
사도요한이 밧모섬에서 혼자가 되었을때 예수님을 만났던 것처럼 우리도 영적인 밧모섬이 되어 혼자가 되면 예수님이 찾아오시고, 예수님과의 두번째 만남이 시작된다.(첫번째 만남은 우리가 처음 예수를 믿고 중생하고 거듭났을때를 말한다.)
혼자가 되는 것은 누구나 두려워한다.
그러나 영적으로 혼자가 되면 예수님을 만나며, 예수님과 함께 할때 더이상 혼자가 아닌것이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을 만나고, 소망과 믿음과 담대함을 얻으며 미래가 열려지는 축복을 받자.
사람과 사람의 만남 속에서도 즐거움과 기쁨이 있다.
이러한 즐거움과 기쁨은 내 자신이 상대에게 베푼만큼 돌아오는 것이다.
그러나 주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이와는 반대이다.
말씀과 은혜, 속죄와 성결 등 모든 것을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다.
우리는 이제 예수님과 하나가 되어야 할때이다.
고난이 가까워질때 예수님과 가까워지며, 고난과 멀어질때 사람과 가까워진다.
사람과 가까워짐은 곧, 예수님과 멀어지는 것이다.
>> 10절
* 성령의 감동
사도요한은 성령의 감동을 받아 계시록을 기록할수 있었다.
요한계시록은 성령의 감동으로부터 시작된 책,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한 책이다.
그는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 가장 먼저 받은것이 성령의 감동이다.
계 1:10 에 1차 성령의 감동을 받고, 계 4:2 에서 2차 성령의 감동을 받게된다.
1차 성령의 감동에서는 요한계시록을 기록해 책에 써서 소아시아 일곱교회에 보내라는 지시를 받게되고(계 1:1, 11), 2차 성령의 감동에서는 그 영계가 보좌세계에 올라가니 이것이 최고의 영계 축복에 도달하는 과정이다.
우리도 사도요한같이 성령의 감동을 받되, 1차 2차 뿐 아니라 계속적으로 받아야 한다.
이유는 벧후 1:20-21 성령의 감동을 통해 기록된 예언이기에 성령의 감동 없이 예언을 풀면 사사로이 풀게 되기 때문이다.
성령을 이미 받았다 해도 성령으로 사로잡혀 충만해져야 예언의 말씀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성령에 사로잡히면 아무리 오래 기도해도 시간 가는줄 모르고 기도하며 시, 공간까지 초월하게 된다.
성령의 감동이 있길 축원한다.
* 주의 날
주의 날 곧, 예수님이 살아나신 주의 날이니 부활 주일이다.
사도요한이 예수님을 만나고 성령의 감동을 받은 날은 부활 주일인 것이다.
부활 주일날 예수님이 찾아오사 사도요한은 영적 부활의 축복을 받고,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 큰 음성을 듣다
말씀을 듣는 귀가 열리는 역사이다.(사 50:4-5)
>> 11절
* 일곱교회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교회는 말세에 택한 종들의 심령에 이루어야 할 성전으로 말씀대로 하면 복을 받고, 말씀대로 하지 않으면 화를 받음을 말씀하고 있다.
>> 12절
* 몸을 돌이켜
은혜시대에 몸 담고 있던 것을 환난시대로 완전히 돌이키라는 것이다.
살전 5:23 에 보면 영과 혼과 몸이 예수님의 강림하실때까지 흠없게 보전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사도요한은 은혜시대 종이었으나 환난시대 종으로 전환 되었다.
요한복음은 시작하는 복음이었다면 요한계시록은 마쳐지는 복음이다.
* 일곱 금촛대를 보다
사도요한은 눈이 열려 일곱 금촛대를 보았다.
우리도 성령의 감동을 받고 귀가 열려지고, 눈이 열려지며, 입이 열려지는데 까지 이르러야 한다.(사 50:4-5)
눈이 열릴때 일곱 금촛대를 보았음은 이 복음으로 마지막 축복을 받을 사람은 가장 먼저 심령에 금촛대 성전을 이루어야 함을 말한다.(계 1 :20)
참고로 은혜시대 예수님도 가장 먼저 말씀 하신 서두 또한 심령에 대한 것이었다. "심령이 가난한 자, 의에 주리고 목 마른 자.."
마지막때는 금촛대 교회를 심령에 이룬 자에게 예수님이 왕래 하신다.
>> 13절
* 인자 같은 이
인자임에도 사도요한은 인자 같은 이라고 하였다.
이유는 삼년동안 함께 했던 온유하고 사랑이 많으시고 인자하신 그 예수님의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밧모섬에 나타나신 예수님의 모습은 심판주의 모습이요, 만왕의 왕의 모습으로 오신것이다.
>> 14-16절
*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 눈은 불꽃 같고
*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다
*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다
주님의 음성을 물소리 또는 10절 같이 나팔소리로도 듣게 된다.
* 그 오른손에 일곱별이 있고
마지막때 교회는 일곱 금촛대 교회가 되어야 예수님이 왕래하시며, 종은 일곱 별같이 주의 오른손에 붙들려야 한다.(계 1:20)
*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입에서 나오는 심판의 권세로 모든 악인을 죽인다.(계 19:21)
*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취는것 같더라
>> 17절
* 죽은자 같이 되다
사도요한은 심판의 주님을 만나는 순간 죽은자 같이 되었다.
우리는 심판의 복음을 접하는 순간 죽은자 같이 되어야 한다.
죽은 자란 육성 곧, 육신의 소욕, 세분화 하면 인간성과 죄악성이 죽어짐을 말한다.(갈 5:16-17)
생명이 아닌 우리의 육성이 죽어져야 한다.
복음과 진리앞에 인간성(내면적인 것으로 자존심, 질투, 시기, 욕심, 불평, 원망, 짜증, 고집 등)과 죄악성(외면적인 것으로 사치, 음란, 오락, 향락, 방탕함, 술취함, 마약, 도박, 부의치부 등)이 죽어져야 한다.
* 오른손을 얹다
심판주님은 죽은자 같이 되어 혼절한 사도요한에게 손을 얹으시고 안수해 주신다.
>> 18절
*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 19절
*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 본 것 : 일곱별과 일곱 금촛대이며,
> 이제 있는 일 : 심판주의 모습에 사도요한이 죽은자 같이 된 것 같이, 구원 받을 사람에게는 육성이 죽는 모습을, 심판 받은 사람들에게는 생명이 끊어지는 것으로 예시해주신 것이다.(계 14:1)
> 장차 될 일 : 계 1:1 의 반드시 속히 될 일, 계 4:1 의 마땅히 될 일, 계 22:6 결코 속히 될 일이다.
우리는 성경 속에서 된 일과 될 일을 구분해야 한다.
된 일은 예수의 동정녀 탄생과 십자가 부활과 승천, 성령강림이며(고전 15:3-4), 될 일은 환난과 재림, 심판과 천년왕국, 무궁천국이 이루어질 일이다.
된 일과 될 일이 합하여져 신,구약 성경이 완성된다.
오늘날 교회가 된 일만 중심하고 있으나 된 일만 알면 성경의 반만 아는 것이다.
된 일은 사 복음서와 바울 서신이 기준이며, 될 일은 선지서와 요한계시록이 기준이 된다.
될 일에 대해 모르면 환난에 대한 대비책을 모르게 되며, 재림에 대한 것을 모르기에 재림의 주님을 맞이할 예비를 할수 없는데, 이러한 '될 일'의 말씀이 몰라도 되는 차원의 것인가?!
된 일을 통해서 예수를 믿었다면 될 일을 통해서 예수를 닮아야 하겠다.
된 일은 믿고 가되, 될 일을 바라 보고 가라.
된 일과 될 일을 모두 아는 사람은 영과 혼과 몸이 흠없이 보전되어 재림의 주님을 맞이하게 된다.(살전 5:23, 히 9:28)
복음의 완성된 진리를 아는 종들은 구원의 완성과 축복의 완성에 이르게 될 것이다.
> 기록하라 : 이는 감동의 차원이 아니다.
기록하도록 주님이 직접 지시 하신 것이기에 그대로 해야 한다.
제95차 성산 기도원 성회
아침 :: 요한계시록 강해 - 2
2005. 4. 6. 수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