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 단단한 식물을 먹어야 할 때다(히5:12~14)
본문에서 젖과 단단한 식물 두 가지로 표현했다.
젖은 히6:1~3에서 그스도도의 초보라고 말씀했다.
더 정확하게는 우리시대에는 된일의 말씀이 그리스도도의 초보요, 된일의 말씀을 먹는 것은 젖을 먹는 것과 같다는 말씀이다.
단단한 식물은 젖보다 한 차원 높은 차원, 될일의 말씀으로 어린아이는 먹을 수 없는 것을 말씀한다.
지난 2천년 동안은 젖과 같은 된일을 듣고 먹었지만, 이제는 단단한 식물을 먹을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지난 2천년 동안 된일의 말씀을 받아서 왔다면, 이제는 될일의 말씀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1)젖을 먹지 않아야 할 때다(히5:12~14)
히6:1~3에 젖은 그리스도도의 초보라고 말씀했다.
히5:12에 ‘때가 오래므로“한 이 때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가 우리구주로 오셨다가 가신 그 때가 오래 된 것을 말씀한다.
그 때가 오래 될 때는 마땅히 선생이 되어야할 텐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으니, 젖을 먹지 않아야 할 때요,
그리스도도의 초보를 벗어나라는 것이다.
젖을 계속 먹는 사람은 어린아이 신앙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어린아이 신앙은 누가 가르쳐 주어야 하고, 이끌어 주어야 하고,
챙겨줘야 하는 낮은 차원의 신앙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본문에서는 어린아이라고 비유했다.
젖은 어린아이가 먹는 양식이므로 젖을 먹는 한 어린아이를 못 벗어 난다는 것이다.
마태복음 24장과 25장은 복음서의 종말론이라 할 수 있는데, 마24:19에 마지막 때까지 젖을 먹이는 자는 화가 있다고 말씀했다.
히브리서는 ‘젖을 먹는자’라 하였고, 마태복음은 ‘젖을 먹이는 자’라고 했으니, 먹는자나 먹이는자는 둘다 화가 있다는 것이다.
지난 2천년 동안은 젖을 먹는 시대였으므로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 때가 오래되고 주의 재림이 임박한 이때는 젖을 먹는 차원을 벗어나서 단단한 식물을 영의 양식으로 먹으라는 것이다.
2)단단한 식물을 먹어야 할때다(히5:12~14)
본문에서는 젖을 먹고 어린아이로 살던 영적인 수준의 사람이 장성한 자로 한 차원
도약하려면 젖을 먹는 차원에서 단단한 식물을 먹어야 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
단단한 식물, 될일의 말씀을 영의 양식으로 먹어야 장성하게 된다.
그렇다면 단단한 식물을 먹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➀의의 말씀을 경험하게 하신다(마6:31~33, 사9:6~7, 사32:1)
단단한 식물은 먹는 것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의의 말씀을 경험하게 된다.
된일의 말씀을 계속 먹는 어린아이 수준은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하게 되고,
단단한 식물 될일의 말씀을 먹는 사람은 의의 말씀을 경험하게 된다.
의의 말씀이란? 마6:31~33, 33절에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고 했으니,
천년왕국 그리스도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는 말씀이 의의 말씀인 것을 말씀하고 있다.
▲사26:2~3에 의로운 나라로 들어가는 문이 열린다
▲사9:6~7 7절에 공평과 정의로 그 나라를 굳게 세우신다
▲사32:1에 장차 한왕이 의로 통치한다. 이와 같은 의는 천년왕국 그리스도의 나라를 이 땅에 이루는 말씀을 가리키는 것이다.
단단한 식물 될일의 말씀을 영의양식으로 먹는 사람은 천년왕국 그리스도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말씀을 경험하게 하신다!
➁장성한 신앙의 사람을 만드신다(학2:4)
히5:14에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라 말씀했는데,
이는 단단한 식물과 영적으로 장성하는 것은 떼어 놓을 수 없는 것을 말한다.
단단한 식물을 먹으면 어리아이 신앙에서 장성한 자 즉 성숙한 신앙이 되는 것이다.
장성한 신앙이라? 자립적인 신앙으로 스스로 자신을 지키고, 스스로 온전히 자신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신앙을 말한다.
학2:4 ‘스룹바벨아 스스로 굳세게 할찌어다 ...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하나님은 그 시대 백성들에게 스스로 성전건축 할 것을 말씀하셨다.
바벨론 70년동안 포로생활에서 돌아와 처음에 한 것이 성전 지으려고 한 판자를 가져다가 자기 집을 짖는 죄를 범했다.
그것을 보고 학개선지자가 책망하면서 기도할 때 하나님이 선지자 학개, 대선지자 여호수아,
유다총독 스룹바벨 그리고 그시대의 백성들의 마음을 흥분 시켰고,
격동 받은 그들이 산에서 나무를 베어다가 성전건축을 하기 시작했으니, 여기서 그들의 성숙해진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장성한 신앙은 자립적인 신앙이요, 지도자적인 신앙이다.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기보다 가르치는 단계에 이르는 장성한 자의 신앙이 된다.
장성한 신앙의 사람은 누가 기도하라 하지 않아도,
주일을 잘 지키라 하지 않아도, 십일조를 잘 드리라 말하지 않아도,
전도하라 하지 않아도 스스로 영적인 활동을 잘 관리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장성한 자의 신앙이 되는 것이다.
애굽에서 모세를 따라나온 히브리민족이 어느것 하나도 모세가 없이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럼에도 모세의 말을 잘 따르지 않았던 히브리민족도 지도자가 바뀌고,
여호수아가 지도자가 되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기까지 달라진 모습을 성경을 통해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40년 광야생활을 겪으면서 가나안 땅 입구에 와서 성숙하고 장성해진 것이다.
여호수아를 지도자로 세울 때 그들은 우리는 모세의 말을 순종한 것 같이 당신 말을 순종할 것이요 거역하면 죽을 것이라는 고백을 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여호수아의 명령 따라 요단강을 건너고, 여리고를 돌면서 약속의 땅을 기업으로 얻을 수 있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이제는 장성한 자의 신앙이 되어야 한다.
이제는 하나님이 우리를 장성한자의 신앙을 만드셔서 자립적인 신앙, 지도자의 신앙을 만들어 가신다.
➂지각 있는 종을 만드신다(욥11:11~12)
히5:14에서는 지각 있는 사람을 말씀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각없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욥11:11~12에서는 허망한 사람은 지각이 없는 사람으로 악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지각이란? 무엇이든지 알고 깨닫는 은혜를 지각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단단한 식물을 먹는 사람에게는 인지능력과 인식작용이 뛰어나서 무엇이든지
잘 알고 잘 깨닫는 능력이 장성한 사람에게 주시는 지각이다.
그러므로 지각 있는 사람으로 만드셔서 악을 행하는 사람이 되지 않고, 지각 있는 장성한 사람으로 살게 하신다!
➃연단을 거쳐 변함없는 종을 만드신다(욥23:10, 말3:2~3)
단단한 식물을 먹고 연단을 거쳐 장성한 종은 삶 속에서 여러 가지 연단을 거치면서 변함없는 종이 된다.
히5:14 ‘연단을 받아’ 연단을 받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말3:2~3에 금과 은이 연단을 거치면서 잡석이나 잡티가 제하여지고 순금이 될 때,
그 가치가 상승되는 것 같이 우리의 신앙도 믿음의 연단을 통해서 신앙에 가치관이 높아지고 향상되어 진다.
이런 역사는 단단한 식물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역사이다.
욥23:10 ‘내가 단련 받은 후에는 정금같이 나아오리라’ 욥이 굉장히 어려운 과정을 겪었지만 그 시대 최고의 신앙의 사람으로 성경의 기록에 남겨졌다.
먼 훗날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은 욥이 겪었던 일을 가지고 위안을 삼고 그것을 거울삼아 인내하고 참으며 승리하는 자의 반열에 서기도 했다.
금과 은이 연단을 거치면서 그 가치가 상승되는 것 같이 우리는 단단한 식물, 될일의 말씀을 먹으면서 신앙의 연단을 거쳐 존재감과 가치관이 높아진다.
이런 은혜가 단단한 식물을 먹으므로 우리에게 있을 줄 믿는다!
➄선악을 분변하는 종을 만드신다(사5:20~21)
히5:14에서는 단단한 식물을 먹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역사를 말씀하고 있다.
그러나 사5:20~21은 분별력 없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현상에 대해 말씀했다.
마지막 때 영광의 빛을 받지 못하고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흑암이 덮여져 영계가
어두워진 사람은 마치 더듬이가 없어진 곤충과 같이 분별력을 상실한다는 것이다.
분별력을 상실하면 진리와 비진리를 혼선하고, 어두움을 분별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역사와 마귀의 역사를 분별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단단한 식물을 먹고 영적으로 장성하여 지각 있고 연단을 거친 종은 선과 악을 분별하고
변론하는 데까지 이르게 되니, 장성했다는 것이며 지도자의 수준에 도달하게 만드시는 역사인 것이다.
이제 선과 악을 분별하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될일 즉, 단단한 식물의 말씀을 변론하고 전할 수 있는 합당한 종들이 모이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분별은 자신을 살리기 위한 것이고, 변론은 타인을 살리기 위해 필요한 것이므로, 이제는 분별해서 자신도 살고 변론해서 남도 살리는 교회가 되자!
결론 : 시대에 맞는 양식을 먹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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