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자가 복된 삶을 살 때다 (계1:3)
보통사람들의 복된 삶은 무엇인가? 잘 먹고 잘살고 아무 문제없이 잘 지낼 때 복된 삶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것은 지극히 세상적인 기준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복된 삶의 기준을 분명히 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대 우리에게 복된 삶은 어떤 것인가? 계1:3같이 이 예언의 말씀을 읽고 듣고 빼앗기지 않는 삶이 복된 삶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된 삶의 기준을 말씀에 두어야 하겠다.
그렇다면 사명자가 복된 삶을 사는 것은 어떤 삶인가?
1) 복음의 좋은 동역자의 복된 삶을 살 때다.
우리가 받은 복음은 계14:6에 영원한 복음이다. 영원한 복음을 다르게 표현하면 아름다운소식·될일의 말씀·하나님의 비밀·예언의 말씀이라고 한다.
영원한 복음을 받은 종은 복음의 좋은 동역자의 복된 삶을 살아야 하는데, 동역자란 같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함께 하는 것을 동역자라고 말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목사는 목사와 함께, 장로는 장로와 함께, 강도사는 강도사와 함께, 성도는 성도와 함께 뜻을 같이하는 것을 말한다.
요한계시록에서는 복된 삶이 아니면 화가 온다고 말씀하고 있으니, 화 아니면 복이라는 무서운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이되는 복된 삶을 살아야 하겠다.
성경에서 복음의 좋은 동역자로 살다가 인생을 마감한 사람들을 살펴보자.
히브리 민족이 바벨론에 70년 동안 포로 생활을 청산하고 예루살렘에 들어왔을 때 예루살렘은 황폐해져 있었다. 그때 총독 스룹바벨을 중심으로 스룹바벨 성전 재건축 운동이 일어났고, 그때에 좋은 동역자로 선지자 학개와 대 제사장 여호수아가 있었다.
이 세 사람이 자기 분야에서 최고의 사람으로서 스룹바벨 성전 재건축 운동에 전적으로 힘을 실었다.
세 사람은 같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었지만, 시기하거나 질투하거나 견제하거나 모함하고 방해하지 않았고, 스룹바벨 성전 재건축에만 최선을 다하였으니, 하나님이 그들에게 일치한 마음을 주셔서 기쁘게 잘 해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 역시도 복음을 위해 하는 일에는 절대로 대적하거나 견제하거나 비방하고 방관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복음의 좋은 동역자가 있는가 하면, 복음의 방관자, 대적자, 배신자도 나온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우리는 좋은 동역자로서의 복된 삶을 살아야 한다.
하나님은 복음의 좋은 동역자로 함께 하는 사람에게도 같은 축복을 주시는 것이다.
*베드로가 성령에 충만하여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수천 명씩 회개시키는 역사가 있을 때 사도 요한도 옆에 따라다녔지만, 어떤 역사도 나타냈다는 말씀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은 없다.
그러나 오순절 역사 때 베드로와 함께 성령을 받고, 중생한 사도 요한으로서는 자존감이 떨어지거나 베드로를 시기할 만도 했지만 그는 오히려 기도하는 사람으로서 베드로에게 힘이 되어 좋은 동역자가 되어 주었다.
그런 진정한 동역자였던 사도 요한에게 주후 95년경 밧모섬에 있을 때, 주님이 사도 요한을 찾아오셔서 종말에 이루실 말씀, 요한계시록을 기록하게 하시는 축복을 주셨다는 것이다.
요한복음 21장에 베드로가 주님이 사도요한을 사랑하시는 것을 알고 ‘이 제자는 어떻게 되겠삽나이까’ 물을 때 예수님은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찌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하셨으니, 주후 95년경 사도요한이 밧모섬에 있을 때 찾아오셔서 요한복음 21장의 말씀을 이루셨으니 요한계시록을 기록하게 하신 것이다.
사도 요한은 베드로와는 다른 사명이 있었으니, 그것이 요한계시록을 기록하는 사명이요, 기록하면서 그의 시대를 열어주신 것이다.
복음의 시작하는 일에는 베드로가 했지만, 기독교 종말에 마치는 역사는 사도 요한으로 하여금 하게 하셨다 보는 것이다.
우리도 교회에서 동역자로 협력자로 있으면서 사도 요한 같이 뚜렷한 하나님의 역사가 없다 할지라도 사도 요한의 시대를 열어주셨듯이 우리에게도 기회가 공평하고 동일하게 내려 주신다는 것을 믿고 가야 할 줄 믿는다.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필요에 따라 다 쓰신다,
자신이 처해있는 현실과 생활 속에서 무엇을 해야 동역자의 복된 삶인지 돌아보고 좋은 복된 동역자가 되어보자!
2) 복음의 좋은 협력자의 복된 삶을 살 때다
복음에 좋은 동역자가 있다면, 좋은 협력자가 필요하다.
*노아가 방주를 만들 때 그의 가족이 좋은 협력자라 할 수 있겠다.
노아는 하나님이 주신 방주를 설계대로 지시하고 진행할 때, 가족 중 누구라도 불평불만하고 불순종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으니, 노아가 하나님의 사람임을 인정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노아가 그냥 평범한 아버지로 보이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면 방주는 절대로 완성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노아의 가족 모두에게 구원의 섭리가 있으므로 일치한 마음을 넣어 주셨고, 아버지기 이전에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하셨다.
우리 시대 영적 가장도 노아 같은 믿음을 가져야 하겠고, 우리의 자녀들은 노아의 자녀와 같이 영적 가장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존중하고 인정하는 가정으로 복된 협력자가 나와야 한다.
*모세가 히브리 민족 이백만을 이끌고 출애굽 할 때 좋은 협력자가 있었는데, 그 사람이 여호수아요, 아론과 훌이다.
여호수아는 칼을 들고 나가 아말렉족속과 싸워 주었고, 싸움에 이기도록 모세가 손을 들고 있을 때 지치지 않도록 양쪽에서 팔을 받쳐 들고 힘이 되어 주었던 아론과 훌이 좋은 협력자였다.
이들과 같은 협력자가 모세 주변에 있었기에 출애굽 하여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당시에 여호수아와 갈렙을 포함한 열두 명을 가나안땅에 정탐꾼으로 갔다 돌아왔을 때,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긍정적인 견해를 얘기했고, 나머지 열 명은 장대한 그들 앞에 우리는 메뚜기 같다는 부정적인 말을 하였다.
을 기업으로 얻을 수 있었다.
하나님이 여호수아와 갈렙에게는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게 하시려고 부정적인 생각보다 긍정적인 생각을 넣어주셨다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여호수아는 모세를 이어 그 시대 최고의 지도자가 되었으니, 좋은 협력자가 훗날 좋은 지도자가 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교훈으로 보여주고 계신 것이다.
*초대교회 역사를 보면 바울에게 실라는 좋은 협력자였다. 바나바가 실라와 함께 가는것을 반대해도 끝까지 실라와 함께 가려는 바울을 볼 때 실라는 그만큼 바울에게 인정을 받은 사람임은 분명하다.
이 시대에도 앞으로 많은 복음의 일을 할 때 여후수아와 갈렙 같이 긍정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나오는 종들이 일어나서 훗날 좋은 지도자로 빛이 나게 쓰일 줄 믿는다.
3) 복음의 좋은 봉사자 후원자의 복된 삶을 살 때다
복음의 동역자와 협력자가 있다면 후원자도 있어야 한다.
동역자와 협력자는 눈에 띄지만, 봉사자와 후원자는 눈에 띄지 않고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 함께하는 종들이다.
*엘리야에게는 사르밧 과부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좋은 봉사자로 후원자로 받들었고, 엘리사에게는 수넴 여인이 힘이 되어 주었다.
*초대교회 바울에게는 자주 장사 루디아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좋은 봉사자, 후원자로 힘이 되어 주었다.
초대교회가 그했던 것 같이 우리시대도 교회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보이지 않는 가운데 봉사하고 후원하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좋은 동역자로 협력자로 봉사자로 후원자로 계속하여 복음에 힘이 되고, 복음의 긍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갈 때 돌아오는 축복은 클 것이다.
4) 복음의 좋은 물권자의 복된 삶을 살 때다
복음의 좋은 동역자, 협력자, 봉사자, 후원자도 있어야 하겠지만, 복음의 좋은 물권자가 있어서 복음의 뒤에서 물질로 뒷받침해 주는 사람도 나와야 한다.
약5:1~6의 말씀을 보면, 말세에 제물을 쌓아두면 그 물질이 소리를 지르고 쌓아둔 사람의 금은 녹이 슬고 그 옷은 좀먹는다고 말씀하고 있다. 이는 우리의 믿음을 금에 비유한 것으로 금이 녹이 스는 것과 같이 믿음이 변질 된다는 것이며, 옷이 좀먹었다는 것은 세마포예복이 더렵혀지는 신앙의 정절을 지키지 못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 이사야 선지자는 마지막 때 주실 물질에 대해 어떻게 예언했는가.
사23:18 ‘그 무역한 것과 이익을 거룩히 여호와께 돌리고 간직하거나 쌓아두지 아니하리니 그 무역한 것이 여호와 앞에 거하는 자의 배불리 먹을 자료, 잘 입을 자료가 되리라’ 하였다.
야고보 사도의 말씀과 같이 말세에 물질을 쌓아두지 않고 복음을 위해 아낌없이 쓰려고만 한다면, 그 기업에 계속하여 이익을 돌리시는 물권의 축복을 주신다는 약속된 예언의 말씀이다.
사단의 역사는 우리를 복음의 방관자, 대적자, 비판자, 배신자가 되게 하여 망하고 죽도록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역사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역사하는 사단은 물리쳐 주시고, 용의기는 꺾어 주시고 마지막에 사명 있는 종들을 참 좋은 동역자로 협력자로 봉사자로 후원자로 물권자로 만드셔서 훗날 지도자로 쓰시니, 그 지도자의 축복은 다시예언하는 종의 축복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때까지 우리는 영원한 복음의 참 좋은 동역자·협력자·봉사자·후원자·물권자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하겟다.
결론: 복음의 좋은 지도자로 쓰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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