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활의 기운을 받은 사랑하시는 종의 축복 (요21:20-22)
사도요한은 부활의 기운을 받은 예수님의 유일한 사랑하시는 제자다.
우리도 이 시대에 사도요한같이 부활의 기운을 받은 사랑하시는 종의 축복을 사도요한같이 받아야 한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십자가를 지고 순교할 것을 말씀하시자 베드로가 사도요한은 어떻게 될 것인지 물었을 때 예수님께서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찌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베드로와는 구별된 사명을 말씀하신 것이다.
1) 예수의 환난과 참음에 동참할 수 있는 종의 축복 (계1:9)
만약에 사도요한까지도 도망가고 예수님의 곁에 다른 사람이 서있었더라면 예수님의 사랑하시는 제자라는 말이 사라지는 것이다.
그러나 사도요한은 사랑하시는 제자라는 것이 말뿐만이 아니고 사실이라는 것을 행동으로 증명해 보였다.
우리가 복음을 사랑하고 진리를 사랑하고 복음을 위해 목숨을 걸고 생명을 받칠 수 있다면 그러한 확신과 증거가 생활 속에서 나타나야 한다.
2) 복음과 주를 사랑하는 종의 축복 (요21:20)
예수님이 만찬석에서 이중에 나를 팔 자가 있다고 말하였을 때 베드로는 자신이냐고 물었지만 사도요한은 "주여 주를 파는 자가 누구오니이까"하고 물었다.
즉, 사도요한은 예수님을 팔 마음이 전혀 없었을 뿐더러 자신은 절대 아니라는 것을 담대히 말하였다.
우리가 (계14:6)영원한 복음을 사랑하는 확실한 증거가 있다면 그 어떠한 것도 망설이거나 두려워할 것이 없다.
전에는 천국복음을 사랑했으나 이제는 영원한 복음까지도 주를 사랑하듯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3) 밧모섬에 가도 주의 약속을 기다리는 종의 축복 (계1:9)
요21:20-22절에서 내가 올 때까지 머물러 두고자 한다는 그 약속을 사도요한은 의심 않고 기다렸다.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축복은 그 일이 시행될 때까지 밧모섬에 갈 지언정 기다려야 한다.
요한계시록을 기록한 때를 주후 95년경으로 보고 있는데 예수님이 요한복음21장에서 약속하실 때가 주후 33년이었으니 사도요한은 예수님의 약속을 받은 날로부터 62년을 기다린 것이다.
밧모섬이란 영적으로 혼자가 된 것인데 밧모섬에서 땅의 길이 막힐 때 하늘의 길이 열리는 역사가 있다.
4) 구별된 사명을 받는 종의 축복 (요21:22, 계1:10-11)
요21:22절에서 말한 구별된 사명을
계1:10-11절에 와서 요한계시록을 기록하는 사명으로 받게 된다.
요한계시록이 없다면 미래가 없는 것이며, 예언만 있지 실재로 이루어지는 것이 없게 되는 것이다. 성경의 모든 예언을 현실로 성취시키는 책이 요한계시록인 것이기에 매우 중요한 책이다.
우리의 인간적인 부족은 여러 곳에서 드러나지만 복음을 위한 열정에는 변함이 없다.
5) 사도요한의 형제가 되는 종의 축복 (계1:9, 계6:9-11)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아는 것으로만 사도요한의 형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사도요한같은 신앙, 사도요한같은 사상, 사도요한같은 마음, 사도요한같은 정신, 사도요한같은 영계축복, 사도요한같은 말씀무장, 사도요한같은 미래에 대한 확신, 사도요한같은 사명감을 바로 가져야 사도요한의 형제가 되는 것이다.
(계1:5)형제라는 것은 피를 나눠야 하는데 사도요한과 우리는 예수님의 보혈의 피를 나눈 것이다.
(계1:3)예언의 말씀으로 하나가 된 형제,
(계6:2)백마의 사상으로 하나가 된 형제,
(계1:1)반드시 속히 될 일을 바로 깨달아 미래를 내다보는 기준이 같은 형제가 되어야 한다.
사도요한은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기록했고 또한 그는 순교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요한은 요한계시록의 말씀 중 다시예언은 하지 못하지만 첫째 부활로 살아나서 계속해서 이루어지는 예언이 성취되는 축복을 받게 된다.
계6:9-11절에서는 순교자들의 동무, 형제라는 말을 했는데 이는 계11:10-11절에서 인맞은 종들이 죽어서 삼일 반 후에 이들이 함께 살아나게 되는 것이다.
결론 : 사랑받는 종의 축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