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르짖는 제단 축복. (사19:19-22)
부르짖는다는 것은 사26:16-17절같이 간절한 기도다.
간절한 기도를 하는 제단에 축복이 있다는 것이다.
간절히 부르짖을 때에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고 개인에게는 문제는 해결되고 병든 곳은 치료받고 상처받은 마음도 회복되는 역사가 함께 있게 된다.
사명 있다 함은 마지막 때에 막중한 사명이 있는 종을 말함이며 이러한 종들은 간절한 기도를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것이다.
기도가 안 되던 사람, 기도가 가라앉아 있는 사람, 기도의 줄을 놓고 있는 사람, 기도할 마음을 상실한 사람, 기도할 여건이 안 되는 사람들의 마음에다가 기도할 수 있는 열심을 넣어 주시고 기도의 영을 넣어주시고 기도의 능력을 주셔서 기도가 터져 나오게 하신다.
이 기도는 하나님께 상달되고 그 기도를 열납하시며 영계가 회복되고 건강도 회복되고, 심령 회복, 신앙 회복, 체질 회복, 사상 회복, 물질 회복, 가정 회복, 교회도 회복되는 역사가 일어난다.
모두 기도의 열심이 식어져서 기도의 줄을 놓고 살며 밖으로 나오면 세상 사람과 똑같이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사명있는 종이 되어 부르짖는 기도로 기도의 줄을 잡아야 한다.
기도하는 사람은 승리하고, 기도하는 사람은 응답을 받고, 기도하는 사람은 복을 받고, 기도하는 교회는 부흥되고, 기도하는 가정은 복이 되고, 기도하는 사람은 평탄하다.
1) 표적과 증거를 주시는 축복. (사19:19-22)
하나님께서 마지막에 특별한 제단을 중앙제단이라고 표현하셨는데 중앙제단은 부르짖는 종들이 모이는 제단이다.
부르짖는 중앙제단은 사람을 위한 제단이 아니며 오직 여호와를 위한 제단이다.
이러한 제단에는 여호와를 위하여 기둥이 있을 것이라고 하였으니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여호와를 위하여 세운 기둥같이 되어 부르짖어야 한다.
또한 여호와를 위하여 표적과 증거를 주신다.
여호와를 위한 기둥을 세우고 그 종들에게 표적과 증거를 주시면 표적과 증거를 통해 21절같이 여호와를 알게 하시니 여호와를 바로 알면 부르짖는 기도가 나온다.
그 분의 마음과 뜻, 계획, 모략, 작정, 경륜, 계획하신 미래, 지명하신 종, 성경에 기록한 예언을 알게 하시고 그 분의 비밀을 알게 하신다.
우리가 예수를 수십 년 믿으면서도 그 분을 깊이 있게 알지 못하였으나 표적과 증거를 주셔서 여호와를 바로 알게 하시면 기도하므로 알게 하시고 말씀을 읽을 때 알게 하시고 생활 속에서 알게 하신다.
하나님의 역사를 자신이 알려고 해서 알아지는 것이 아니며 자신이 억지로 알려고 하다가는 잘못 알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알게 하여 주시면 온전하고 바른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서원한 것을 갚게 하신다.
기도하겠다고 서원하고 물질 드리겠다고 서원하고 무엇인가를 하겠다고 서원하고서 갚지 못한 것들이 많지만 표적과 증거를 주셔서 여호와를 알게 하시므로 서원한 것을 갚게 하신다.
22절. 그 간구함을 들으시고 그를 고쳐 주시리라.
부르짖을 사명이 있는 종들에게는 부르짖는 일에 장애가 되는 마음의 장애, 생각의 장애를 고쳐주신다.
마음의 장애란 자꾸 근심과 걱정이 생기는 것이고 생각의 장애란 혼잡이나 번민을 말한 것인데 이러한 것들은 부르짖는 일에 장애가 된다.
몸에 육체의 장애도 고쳐주시고, 잘못 사는 생활까지 고쳐주시니 해서는 안되고 가서는 안되는 곳을 간다면 이는 생활의 잘못된 것들이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고쳐주시기를 원한다면 먼저는 여호와께로 돌아가야 한다.
여호와를 위하여 표적과 증거를 주신다는 말씀이 부르짖는 제단에, 간구하는 제단에, 여호와께 마음을 쏟는 제단에 응답되고 치료되고 고쳐주신다.
2) 이사야같은 종이 나오는 축복. (사20:2-3)
이사야는 선지자 중에 최고의 선지자인데 1장부터 66장까지 많은 양의 예언을 한 것뿐만 아니라 천지창조, 예수의 탄생, 십자가, 부활, 승천, 재림, 심판, 천년왕국, 무궁천국에 이르기까지 다각적으로 어느 것도 예언하지 않은 것이 없다.
이사야같은 마음과 이사야같은 중심을 가진 대선지자같은 종이 부르짖으며 이 제단에서 나와야 한다.
계12:1-2절에서도 신령한 영적 교회가 부르짖는 가운데 남자아이같은 사명자가 나온다고 하였다.
하나님이 목자 노릇하는 이사야를 대선지자로 세울 때 사6:1-8절에 눈을 열어 주시고 귀를 열어 주셨다.
눈이 열려 보좌세계를 보았고 귀가 열려 주의 음성을 들으며 탄식을 하였으니 자신이 부정한 입술을 가진 백성 중에 살면서 자신의 입술도 부정해 졌다고 탄식을 하였다.
그 때에 천사가 숯불로 이사야의 입에 대며 죄가 사하여졌고 악이 제하여졌다고 하였다.
선지자로 쓰여질 사람, 여호와의 입이 말씀에 와야 할 사람에게 선지자로 만드는 과정에서 제일 먼저 숯불로 입을 성결케 하신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눈이 열리고 귀가 열리면서 다른 사람을 본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부족을 보았다.
사람에게는 다 허물과 부족이 있기에 남의 허물은 말하지도 말고 들추지도 말며, 또한 신령한 체, 아는 체하지 말고 자신의 부족을 돌아보아야 하며 자신의 부족을 바로 본다면 이사야 선지자같은 축복을 받게 된다.
자신의 부족을 깨달을 때 입이 성결을 받고 죄와 악이 제하여지는 것이다.
그렇게 선지자로 만든 이사야를 사20:2-3절에서 옷을 벗고 발을 벗게 하셨다.
발을 벗었다고 하는 것은 옛사람의 생활을 벗으라는 것이며
옷을 벗었다고 하는 것은 옛사람의 모습을 벗었다는 것이다.
이사야의 입이 성결되니 말씀이 입에 왔고 발을 벗고 옷을 벗을 때에 대선지자로 나서며 1장부터 66장까지 어마어마한 분량의 예언을 입으로 쏟아냈다.
이사야의 심정을 받고 이사야의 정신, 마음, 체질, 생활을 받아서 깨끗하고 성결된 삶을 살아야 한다.
3) 다윗의 열쇠 축복을 주신다. (사22:22)
구약에 기록된 사22:22절의 다윗의 열쇠 축복은 신약에 계3:7절에서 예언이 성취되는 것이다.
마16:19절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천국의 열쇠를 주셨으니 천국의 열쇠란 땅에서 메면 하늘에서도 메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 풀리는 역사가 있게 되며 천국의 복음과 같은 뜻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알리는 복음과 같은 뜻이며 이 열쇠를 베드로만 받은 것이 아니라 천국의 비밀을 깨달은 모든 사람이 받아 오늘까지 온 것이다.
이 열쇠를 가지고 교회도 세우고 복음도 외쳤다.
기독교의 시작은 천국열쇠로 했지만 기독교의 종말은 다윗의 열쇠로 마치는 것이다.
다윗의 계통으로 나신 예수그리스도로 통해서 다윗왕국을 천년동안 그리스도의 나라, 천년왕국으로 이루신다고 하여 다윗열쇠, 다윗 왕국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즉, 다윗의 열쇠란 다윗왕국을 회복하는 말씀과 진리라는 뜻이다.
부르짖는 중앙제단에 눈이 열리고, 귀가 열리고, 입이 성결되고, 발을 벗고, 옷을 벗은 이사야같은 종에게 다윗의 열쇠축복을 주시는 것이다.
다윗의 열쇠를 받은 종이 열면 닫을 자가 없고 닫으면 열자가 없는 열고 닫는 자유로운 역사를 주시니 하늘의 문을 열고 닫는 역사를 주시는 것이다.
또한 빌라델비아 교회에 예수의 이름을 지키고 그 이름을 배반치 않는 사람에게 다윗의 열쇠를 주신다는 계3장의 말씀이다.
4) 물질이 돌아오는 축복을 주신다. (사23:18)
사19장에 애굽땅 중앙제단,
사20장은 이사야같은 종이 나오는 역사,
사22장은 다윗의 열쇠 축복,
사23장은 물질이 돌아오는 축복이다.
두로란 항구 도시 이름인데 이사야 선지자의 시대에 육로보다는 항로가 더 발달하여 두로에 물질이 많아짐에 따라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음란해지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던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것을 보고 두로의 무역은 허사가 되고 두로의 무역은 무효가 된다고 하였으니 이는 마지막 때에 세상의 무역은 다 허사가 되고 여호와를 위하여, 복음을 위하여 하는 무역은 번창해진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그러나 여호와를 위한 무역이라고 하고 복음을 위한 무역이라고 하면서 그 이익을 간직하거나 쌓아두면 화가 되고 그 이익을 거룩히 여호와께 돌리고 간직하거나 쌓아 두지 아니하며 여호와 앞에 거하는 자의 배불리 먹을 자료, 잘 입을 자료로 쓰여진다면 이곳에는 하나님의 복이 있다.
이것이 애굽땅 중앙제단의 축복과 연관이 되어 있는 말씀이다.
세상의 무역은 허사가 되고 무효가 되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무역에는 이익이 생기게 된다.
부르짖는 종들, 부르짖는 제단, 부르짖는 사업, 부르짖는 가정에 물질이 생기게 하시니 물질이 들어올 때 그 물질을 쌓아두어서는 안된다.
물질이 돌아오는 축복을 주신다는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이 이루어지는데 간직하거나 쌓아두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닌 거룩히 여호와 앞에 돌릴 종에게 주신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물질을 주시는 기회가 왔을 때 거룩히 여호와께 돌린다면 그 물질을 계속해서 보장을 받게 된다.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을 여호와께 드리면 여호와께서는 다시 우리에게 물질을 주시고 우리는 그 물질을 다시 여호와께 드리며 물질이 계속해서 순환되어야 한다.
물과 피, 세상의 모든 것들이 흐르며 순환하듯이 여호와가 주신 물질을 한군데에 쌓아두고 간직한다면 분명 그곳에서 물질로 문제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결론 : 부르짖는 곳에 하나님의 역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