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시록 제14장 : 시온산 강림과 심판.
< 4 절 >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계1:5절의 말씀을 볼 때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속죄 받은 사람들이다.
처음 익은 열매로
씨뿌리는 비유로 삼십 배, 육십 배, 백배의 열매 맺음을 말씀하셨는데 신앙의 궁극적 목적은 열매를 맺는 것이다.
열매라 함은 변화성도, 신부의 자격을 갖춘 사람, 하나님의 인 맞은 종이다.
마3:12절에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신다고 하였고
마21:43절에 열매 맺는 백성이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된다고 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열매가 계14:4절에서 말하는 열매와 같은 말씀이다.
암9:9절에 곡식을 체질하도 알곡은 한 알갱이도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였고
사17:6절에 이사야 선지자는 감람나무를 흔들 때에 떨어지는 열매와 떨어지지 않는 열매가 있다고 말씀하고 있다.
우리가 열매를 맺되 떨어지지 않는 열매가 되어야 한다.
요1:1절에 말씀으로 하나님과 함께 계시던 예수님이 요1:14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셨으니 이를 도성인신 진리라고 한다.
계22:16절에 다윗의 뿌리라고 한 것은 다윗보다 말씀으로 먼저 계시던 신성 예수님을 말씀한 것이요, 다윗의 자손이라고 한 것은 다윗의 계통으로 육신의 몸을 입고 우리 가운데 오신 인성 예수님을 말씀한 것이다.
우리는 말씀을 받기 전에 몸이 먼저 생겼고 그 안에 말씀을 받아들이면서 예수가 믿어졌으며 말씀이 우리 속에 들어와서 진리로 믿음이 생기게 하셨고 예수 믿는 사람이 되었다.
말씀이 믿어지던 단계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말씀이 몸에 이루어지게 단계가 되면 선지서가 요한계시록같이 이루어지는 말씀이 우리의 몸에 정착하여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셨으니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하였고 우리는 말씀을 받기 전에 몸이 먼저 생겼지만 말씀이 몸에 이루어진 예수그리스도의 형상, 곧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다.
창1:26-28절에 창조 때에 인간을 하나님의 모양대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시며 내면세계와 외면세계를 아울러 그 분을 닮도록 만드셨으나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고 쫓겨나면서 그 형상을 잃어버리고 타락한 짐승을 닮아버렸다.
그러므로 짐승 같은 행동, 짐승 같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그 분의 말씀이 몸에 이루어지면서 그 분의 형상을 이루는 것이다.
사1:25-26절에 이사야 선지자는 처음과 같이 본래와 같이 회복되라고 말씀하였으니 이 말씀은 창2:7절같이 범죄전의 사람, 타락하기 전의 사람, 선악과를 따먹기 전의 사람으로 돌아가라는 것이다.
사복음서와 사도행전, 로마서, 바울서신 등의 말씀으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우리가 죄사함을 받게 된 것이 믿어졌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고 은사를 받았다.
그러나 선지서와 요한계시록의 말씀, 될 일의 말씀으로 통하여서는 성취되는 역사가 있는 것이다.
된 일의 말씀을 통하여는 심령에 믿음이 생기게 되지만 될 일의 말씀, 미래의 말씀, 이루어지는 말씀을 통하여서는 우리의 심령에 들어와서 운동하고 역사하면서 그 말씀이 몸에 이루어지고 조금씩 예수님의 형상을 이루어가게 되는 것이다.
타인의 간증은 들을 때는 감동되지만 자신의 일이 아니기에 시간이 지나면 자신에게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이고 진리이시기에 그 말씀과 진리가 우리 속에 들어오면 그 분을 닮도록 만들어가는 것이다.
갈4:19절에 우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게 하신다고 하였고,
빌3:21절에 우리의 낮은 몸을 예수님의 영광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신다고 하였고,
고전15:44-49절에 우리는 본래 첫째 아담을 닮은 사람이었으나 흙에 속한 사람이기에 그를 닮은 사람은 필경 흙으로 돌아가고 둘째 아담 예수님은 하늘에 속한 자이기에 우리가 둘째 아담, 예수님을 닮아야 하늘로 갈 수 있다.
고전15:50절에 혈과 육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고 하였으니 혈과 육은 첫째 아담이요, 흙에 속한 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
예수를 믿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남을 체험한 사람이라면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야 한다.
예수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 위해서는 네 가지를 갖추어야 한다.
예수님의 마음.
겔36:26절에 에스겔 선지자는 새 마음, 부드러운 마음이라고 하였고
빌2:5절에 바울은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고 하였다.
예수님의 마음은 겸손한 마음, 용서하는 마음, 희생하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 온유한 마음 등이다.
우리에게는 인간의 마음과 예수님의 마음, 두 마음을 품고 있어서
안 좋은 마음이 올라올 수 있지만 안 좋은 마음이 올라올 때에 말과 행동으로 발산하는 사람과 이를 발산하지 않고 마음을 바꾸어 예수의 마음이 올라오게 할 수 있는 자제력이 있는 사람이 있다.
이는 말씀과 진리로 인한 힘이다.
신의 성품.
벧후1:4절에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신다고 하였고
체질의 변화.
사25:6-8절에 이사야 선지자는 사망이 영원히 멸하여진 체질이라고 하였는데
고전15:52-54절에서 사도바울은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이 이루어지면 죽을 몸이 죽지 않을 몸으로, 썩을 몸이 썩지 않을 몸으로 변화된 변화 체라고 하였다.
사망의 문제는 철학으로도 과학으로도 문학으로도 해결할 수 없으면 오직 예수를 믿는 믿음 외에는 해결할 수 없다.
요5:24절의 말씀같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생을 얻었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게 되었으니 육체가 죽을 때에 영생을 완전하게 얻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으므로 들어온 사망이 골수의 기름과 오래 저장한 맑은 포도주와 같은 요한계시록과 선지서의 말씀을 통하여 사망이 영원히 멸하여지게 된다.
이 말씀이 응하여지면 죽을 몸이 죽지 않고 썩을 몸이 썩지 않는 몸, 즉, 변화체를 이루게 된다는 것이다.
창6:1-3절에 인간은 본래 육체, 범죄하여 심판받을 체질을 가지고 있었으나
요3:3-5절같이 물과 성령을 통하여 중생체를 이루었고,
고전15:52-54절같이 한 단계 더 나아가 변화체질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생활의 변화.
우리에게 가장 안 되는 것이 생활의 변화다.
사43:7절에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한 목적은 인간을 통하여 영광 받으시기 위함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인간은 창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생활을 해야 한다.
인간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방법은 예배인데 찬양, 기도, 말씀, 연보가 어우러져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드리는 것이 예배로서 우리의 생활이 찬양하고, 기도하고, 말씀 듣고, 전하고, 연보하는 생활이 되어야 한다.
사49:3절같이 영광을 돌리는 생활에서 영광을 나타내는 생활로 한 차원 더 높아져야 한다.
영광을 돌리는 것은 예배고
영광을 나타내는 것은
히브리민족이 광야에 나와서 물이 없을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반석을 가리켜 물을 내게 하여 영광을 나타내라고 하셨다.
그런데 그 때의 환경이 히브리민족이 물이 없다고 모세를 원망하고 모세의 화를 돋웠는데 모세가 화를 참지 못하고 "내가 반석을 쳐서 물을 내게 하랴"하며 반석을 두 번 치니 물이 나왔다.
물이 나왔다.
물은 나왔지만 반석을 치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지 못했고 그 일로 인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셨다.
사도바울이 고전10:1-4절에서 반석은 곧 그리스도 주라고 하였으니 모세는 본의 아니게 그리스도를 지팡이로 때린 결과가 되었다.
만약 모세가 반석을 가리켰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냈을 것이고 모세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갔을 것이고 히브리민족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보고 영광을 돌렸을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과 역사로 타인에게 하나님의 전능하신 역사를 믿어지게 만드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다.
주의 종은 늘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생활을 해야 하고 성도들은 늘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생활을 해야 한다.
이렇게 예수의 마음, 신의 성품, 체질의 변화, 생활의 변화를 이루는 것이 예수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는 것이고 이를 열매라고 하는 것이다.
이를 이루는 것은 우리의 힘과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그 분의 말씀, 은혜가 하나하나 쌓여서 점차 이루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까지 예수를 믿어왔으나 이제는 성품의 변화, 성품의 변화, 생활의 변화, 체질의 변화를 이루어 처음과 같이 본래와 같이 회복을 받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