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위무장 바로가지는 교회가 되라. (계3:1-6)
본문에 말씀하는 행위는 도덕적, 윤리적 행위가 아닌 말씀과 진리로 가지는 신앙의 정절이며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행위는 인간의 기본이다.
주님은 사데교회에 네 행위를 아노니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라고 하셨으니 죽었다는 것은 유형적인 교회는 존재하지만 그 안에 생명이 없는 것이다. 주님은 이러한 사데교회에 죽게 된 것을 돌이켜 회개하고 살아나라고 말씀하고 있다.
우리의 기도와 찬양, 예배가 살아나야하고, 예배드릴 때 그 심령이 살아나야 생명이 있는 교회다.
1) 죽게 된 것을 일깨워 다시 살아나게 하라. (2-3)
죽게 된 것이 다시 살아나게 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회개다. 약1:15절에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고 하였으니 죄로 인해 사망에 이르게 되었다면 회개하여 다시 생명으로 돌이켜야 하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영의 양식으로 먹어야 한다. 육적으로도 생존하려면 먹어야 하듯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의 말씀을 영의 양식으로 먹어야 하는 것이다. 지난 이천년 동안은 된 일의 말씀으로 영혼의 양식을 삼았다면 이제는 될 일의 말씀으로 영혼의 양식을 삼아 죽은데서 살아나야 한다.
성령의 은혜로 살아나야 하는데 말씀이 우리의 영혼의 양식이라면 성령의 은혜는 영혼의 생수다.
계3:1절에 사데교회에 나타나신 주님의 모습은 일곱 영과 일곱별을 가지고 나타나셨으니 이는 일곱 영의 은혜를 받으라는 것이다. 행2:1-4절에 마가의 다락방에 내렸던 성령을 요14:16-17절에서 보혜사 성령이라고 하였고 이 성령을 지난 이천년 동안 받아왔다. 그런데 보혜사 성령을 기록한 사도요한은 요한계시록에 와서 일곱 영의 은혜를 받으라고 하였으니 선지서가 요한계시록같이 이루어지는 마지막 때에는 일곱 영의 성령의 은혜를 받으라는 것이다. 이름이 다르다고 해서 성령이 여러분 계신 것이 아니라 성령은 한분이시지만 시대마다 역사해주시는 것이 다른 것이다.
사데교회를 살리기 위해 사데교회에 오셨던 주님이 이 성전에 오셔서 회개할 수 있게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주시며 일곱 영의 은혜를 주실 때 살아나게 된다. 우리의 신앙이 살아나야 하고, 사상이 살아나야 하고, 찬양이 살아나야 하고, 기도가 살아나야 하고, 예배가 살아나야 한다.
창2:7절에 흙으로 아담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시니 생령이 되었고 겔39:10절에 에스겔 골짜기의 해골 때에게 생기가 들어가니 큰 군대가 되었고 계11:11절에 다시 예언하다가 원수의 손에 죽은 인맞은 종 십사만사천의 시체에 생기가 들어가니 다 살아나는 역사가 있게 된다고 예언하였다.
2) 주님이 함께 다니는 삶을 살아라. (4)
사데교회에 흰 옷을 입고 주님과 함께 하는 자가 불과 몇 명이지만 이들은 합당한 자라고 하셨다. 주님과 함께 하기 위해서는 흰 옷을 입어야 하는데 흰 옷이란 계19:6-8절같이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예복이요, 계14:4-5절같이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않는 신앙의 정절을 지키는 자다.
사데교회는 행위가 좋지 않아 죽은 교회가 되었으니 흰 옷을 입지 못하며 주님과 동행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흰 옷을 입은 자가 있어 주님과 동행하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실 때 제자들까지도 모두 도망가며 떠나갔지만 그 중에 사도요한만이 끝까지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까지 따라가고 피 흘려 돌아가시는 주님의 유언을 받았다. 끝까지 변함없는 사도요한에게 주님은 밧모섬에 찾아오셔서 요한계시록을 기록하게 하신 것이다.
슥3:1-2절에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우편에 사단이 붙어 다녔는데 우리의 곁에 예수그리스도, 생명의 주님이 함께 해주시지 않으면 사단이 붙어서 다니게 되는 것이다.
3) 생명책에 이름이 있는 사람. (5)
계13:8, 계17:8절에 생명책에 녹명되지 못한 자들은 모두 잘못된다고 하였고 계20:11, 15절에서도 생명책에 대해 말씀했으며 출32:32-33절에서는 모세가 생명책을 말하였다.
사49:14-16절에 하나님이 이름을 손바닥에 새긴다고 하셨다. 우리의 이름이 생명책에 있다면 기도가 상달되고 응답된다.
◎ 행위무장 바로가지는 교회가 되라. (계3:1-6)
본문에 말씀하는 행위는 도덕적, 윤리적 행위가 아닌 말씀과 진리로 가지는 신앙의 정절이며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행위는 인간의 기본이다.
주님은 사데교회에 네 행위를 아노니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라고 하셨으니 죽었다는 것은 유형적인 교회는 존재하지만 그 안에 생명이 없는 것이다. 주님은 이러한 사데교회에 죽게 된 것을 돌이켜 회개하고 살아나라고 말씀하고 있다.
우리의 기도와 찬양, 예배가 살아나야하고, 예배드릴 때 그 심령이 살아나야 생명이 있는 교회다.
1) 죽게 된 것을 일깨워 다시 살아나게 하라. (2-3)
죽게 된 것이 다시 살아나게 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회개다. 약1:15절에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고 하였으니 죄로 인해 사망에 이르게 되었다면 회개하여 다시 생명으로 돌이켜야 하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영의 양식으로 먹어야 한다. 육적으로도 생존하려면 먹어야 하듯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의 말씀을 영의 양식으로 먹어야 하는 것이다. 지난 이천년 동안은 된 일의 말씀으로 영혼의 양식을 삼았다면 이제는 될 일의 말씀으로 영혼의 양식을 삼아 죽은데서 살아나야 한다.
성령의 은혜로 살아나야 하는데 말씀이 우리의 영혼의 양식이라면 성령의 은혜는 영혼의 생수다.
계3:1절에 사데교회에 나타나신 주님의 모습은 일곱 영과 일곱별을 가지고 나타나셨으니 이는 일곱 영의 은혜를 받으라는 것이다. 행2:1-4절에 마가의 다락방에 내렸던 성령을 요14:16-17절에서 보혜사 성령이라고 하였고 이 성령을 지난 이천년 동안 받아왔다. 그런데 보혜사 성령을 기록한 사도요한은 요한계시록에 와서 일곱 영의 은혜를 받으라고 하였으니 선지서가 요한계시록같이 이루어지는 마지막 때에는 일곱 영의 성령의 은혜를 받으라는 것이다. 이름이 다르다고 해서 성령이 여러분 계신 것이 아니라 성령은 한분이시지만 시대마다 역사해주시는 것이 다른 것이다.
사데교회를 살리기 위해 사데교회에 오셨던 주님이 이 성전에 오셔서 회개할 수 있게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주시며 일곱 영의 은혜를 주실 때 살아나게 된다. 우리의 신앙이 살아나야 하고, 사상이 살아나야 하고, 찬양이 살아나야 하고, 기도가 살아나야 하고, 예배가 살아나야 한다.
창2:7절에 흙으로 아담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시니 생령이 되었고 겔39:10절에 에스겔 골짜기의 해골 때에게 생기가 들어가니 큰 군대가 되었고 계11:11절에 다시 예언하다가 원수의 손에 죽은 인맞은 종 십사만사천의 시체에 생기가 들어가니 다 살아나는 역사가 있게 된다고 예언하였다.
2) 주님이 함께 다니는 삶을 살아라. (4)
사데교회에 흰 옷을 입고 주님과 함께 하는 자가 불과 몇 명이지만 이들은 합당한 자라고 하셨다. 주님과 함께 하기 위해서는 흰 옷을 입어야 하는데 흰 옷이란 계19:6-8절같이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예복이요, 계14:4-5절같이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않는 신앙의 정절을 지키는 자다.
사데교회는 행위가 좋지 않아 죽은 교회가 되었으니 흰 옷을 입지 못하며 주님과 동행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흰 옷을 입은 자가 있어 주님과 동행하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실 때 제자들까지도 모두 도망가며 떠나갔지만 그 중에 사도요한만이 끝까지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까지 따라가고 피 흘려 돌아가시는 주님의 유언을 받았다. 끝까지 변함없는 사도요한에게 주님은 밧모섬에 찾아오셔서 요한계시록을 기록하게 하신 것이다.
슥3:1-2절에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우편에 사단이 붙어 다녔는데 우리의 곁에 예수그리스도, 생명의 주님이 함께 해주시지 않으면 사단이 붙어서 다니게 되는 것이다.
3) 생명책에 이름이 있는 사람. (5)
계13:8, 계17:8절에 생명책에 녹명되지 못한 자들은 모두 잘못된다고 하였고 계20:11, 15절에서도 생명책에 대해 말씀했으며 출32:32-33절에서는 모세가 생명책을 말하였다.
사49:14-16절에 하나님이 이름을 손바닥에 새긴다고 하셨다. 우리의 이름이 생명책에 있다면 기도가 상달되고 응답된다.
결론 : 주님 보시기에 합당한 교회, 합당한 종, 합당한 성도로 살아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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