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시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암3:7)

제142차 [2009/3/5 (목) 저녁 ]   서원한 것을 갚게 하시려고 표적과 증거를 주신다. (사19:19-21)

▣ 서원한 것을 갚게 하시려고 표적과 증거를 주신다. (사19:19-21)

    하나님의 역사는 서원한 것을 갚고 표적과 증거를 받는 방법도 있고 서원한 것이 많은데 그 서원한 것을 잊어버렸거나 서원한 것을 갚을수 있는 형편이 못될때 하나님께서 표저과 증거를 주셔서 서원한 것을 갚도록 만드시는 방법도 있다.

    서원한 것을 갚고 하나님이 주시는 표적과 증거를 받는 것이 아니고 서원한 것을 갚게 하시려고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에게 표적과 증거를 먼저 주신다.
    누구든지 서원한 것을 갚으려는 사람에게 표적과 증거가 내린다.

    사람들은 '서원' 하면 결혼 안하기로 한것, 물질 드리기로 한것을 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은혜를 많이 받고 충성하겠습니다, 믿음으로 살겠습니다, 기도많이 하겠습니다 같이 하나님께 고백속에 한 약속이 있다면 이는 모두 서원인 것이다. 기도속에 서원해놓고 자신도 모르는 그런 일도 있게된다.
    서원한 것을 갚게 하시려고 표적과 증거를 주신다.

    서원한 것은 꼭 갚아야 한다.
    사람하고도 약속을 잘 지키지 않으면 그 사람은 신의가 없는 사람이 되고 사람과의 약속을 잘 지키면 보증수표로 통한다.
    그러나 사람과의 약속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과의 약속이다.
    사람과는 약속이지만 하나님과의 약속은 서원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서원한 것을 갚는 사람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 인정하시는 사람, 신뢰하시는 사람, 하나님이 믿어주시는 사람이 된다.

    누구라도 서원한 것 없다고 자신있게 말할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본인이 잊어버렸거나 아무 생각이 없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역사가 우리에게 내려져서 서원한 것이 일일이 생각나게 하신다면 서원이라는 두글자아래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잊고 살았던 서원한 것이라도 표적과 증거를 주셔서 서원한 것을 갚도록 역사하여 주신다.
    하나님앞에 서원한 것을 갚을때에는 여러가지 장애와 장벽과 난제가 있다.
    그러나 그것을 넘어설때 거기에 기적이, 응답이, 하나님의 역사가 있다.

    삿11:29-40에 보면 입다라고 하는 사사가 전쟁에 나가서 적이 너무 많고 자기 힘이 미약하니까 순간적으로 하나님앞에 이 전쟁에서 나로 승리하게 하시면 내가 이 전쟁의 승리를 마치고 돌아갔을때 누구든지 내 앞에 제일먼저 나오는 그 사람을 하나님앞에 번제로 드리겠나이다 라고 서원했다.

    그 싸움에서 입다가 대단한 승리를 했다.
    그리고 입다가 돌아갔는데 입다있는 무남독녀 그 딸이 소고를 치며 자신을 맞으러 나오는 것이었다.
    입다가 자신이 서원한 것을 딸에게 말하니 그 딸은 자신을 하나님앞에 드리라 하고 시간을 달라했다.
    그리고 그 시간이 지난후 입다는 무남독녀 외딸을 자기 손으로 잡아서 하나님께 드렸다.

    그 입다의 마음이 어떠했겠는가.
    하나님앞에 서원한 것이 얼마나 두렵고 그것을 갚아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막중했기에 그 딸을 드린것이다.
    서원이란 바로 이런것이다.

    우리는 평소에 서원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소홀히 한것을 다시 생각하고 서원한 것을 갚을수 있도록 표적과 증거를 받아야하겠다.

    사무엘상에 한나라는 여인이 하나님께 자식을 달라하여 주시면 종으로 바치겠다했다.
    그녀가 사무엘을 낳고 엘리 제사장에게 드렸다.
    그녀가 해마다 새 옷을 가져다 드렸는데 그때 엘리가 그녀에게 다른 자녀를 주셔서 위로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니 한나가 아들셋 딸 둘을 낳았다.(삼상2:21)

    한나라는 여인은 늘 아이를 낳지 못해 불편해하던 여자였다.
    그런데 아들을 하나 낳았는데 그를 바쳤고, 하나님은 세 아들, 딸 둘 오남매를 축복으로 주신 것이다.

    서원한 것을 갚고자 하는 종들에게 표적과 증거를 주셔서 한나에게 엄청난 축복을 주신것 같이 우리도 하나님의 축복을 기다리고 바라보자.
    서원한 것을 갚으면 더 많은 것, 더 좋은 것으로 주신다는 것이다.

    아들 하나를 낳았을때 그를 드리지 않고 불안해하며 사는 것보다 그 아들을 드리고 세아들, 두 딸의 축복을 더욱 받으며 사는 것이 훨씬 낫다.

    우리가 자녀를 바치기로 서원했으면 그것을 이루어야 한다.
    그럴때 더좋은 축복을 주시는 것이다.
    한나는 사무엘이 유명해지면서 그 어미로 한나까지 성경에서 조명이 된 것이다.

    서원한 것 갚도록 표적과 증거를 주신다.
    우리가 입다같은, 한나같은 신앙을 가져야한다.


1)믿음으로 살려고 서원한 것 갚도록 표적과 증거를 주신다.(히11:1-2)
    우리가 아무리 믿음으로 살려고 해도 하나님이 우리를 믿음으로 살도록 역사해주셔야 우리 자신이 믿음으로 살수 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산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역사이지 우리가 대단한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어떤 일에도 믿음으로 살도록 만들어주신 것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이로써 선진들이 증거를 얻었다.
    우리는 이 어려운 시대에 하나님이 말씀을 주실때, 하나님이 은혜를 주실때, 하나님의 역사를 받을때 우리는 믿음으로 살겠습니다 했다. 그것이 서원이다.

    살다가 은혜가 떨어지고 믿음이 떨어지면 원망하고 불평하고 입으로 수없이 범죄했다. 믿음으로 살지 못했다. 이는 서원을 깨버린 것이다.

    우리 속에 하나님이 더 큰 믿음을 주셔서 절대로 의심없이 불편없이 원망하지 않고 불평하지 않고 믿음으로만 살도록 역사해주신다.
    믿음이 있다면 의심할수 없고 믿음이 없다면 원망할수도, 걱정할수도 없다.

    그런데 우리가 원망하고 불평하고 걱정하고 물러서고 하는 것이 우리자신이 믿음으로 살겠다고 서원하고 우리 자신이 깨버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표적과 증거를 주시는데 히브리11장의 선진들의 믿음을 우리속에 표적과 증거로 주셔서 이삭을 드릴수있는 아브라함같은 믿음, 홍해를 건널수 있는 모세같은 믿음, 불을 부르고 비를 부를수있는 엘리야같은 믿음, 법궤를 메고 여리고를 도는 여호수아같은 믿음, 이런 믿음의 큰 힘을 우리에게 표적과 증거로 넣어주셔서 원망없이, 의심없이, 물러섬없이, 불평없이, 불만없이 물러서지 않는 사자같은 용사의 신앙으로 달려가자.

    바라는 것을 실상으로 이루어내는 믿음을 가지자.
    그믿음으로 한발도 물러서지 않는다. 장애, 장벽, 대적이 있어도 물러서지 않는다. 이런 믿음을 우리에게 하나님이 주셔야 한다.

    그믿음이 우리에게 들어오지 않으면 우리가 어떤일에 두렵고 걱정되고 떨리면서 믿음으로 살겠다는 것이 깨지는 것이다.
    그런데 그 난제와 장벽을 믿음으로 한번만 넘어서면 또이기고 또 넘어설수있는것이다.

    모세와 여호수아가 약속에 땅에 들어갈때 난제와 장벽이 계속됐지만 그들이 믿음으로 갈때 믿음으로 모든 난제를 이겨간 것이다.

    우리에게 믿음을 넣어주실때 우리에게 있는 어떤 문제라도 믿음으로 바라는 것을 실상으로 이루고 갈수있다.
    경제와 난제가 있을때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말라는 말씀아래 아무 피해받지 않는다.

    이런 믿음이 우리자신을 살리고, 가정, 나라를 살린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든든하게 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신뢰하도록 한다.
    항상 푸른신앙으로 시들지 않고 병들지 않고 절대로 변질되지 않는다.
    심지가 견고한 신앙으로 동요되거나 흔들리지 않는다.
    그 신앙이 사자같은 신앙으로 두려움없이 믿음으로 나가게 된다.

    서원한 것을 갚도록 믿음의 힘으로 믿음의 역사로 표적과 증거를 주신다.
    믿음으로 살때이다.
    믿음의 힘을 받자. 믿음의 힘이 우리에게 들어오는 것이 표적과 증거이다. 그 믿음의 힘이 들어오면서 걱정과 근심이 다 물러가고 담대함이 생긴다.
    믿음으로 안되는 것이 없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다.

    아브라함이 100살에 자신의 아내에게 아들을 얻었으니 이것이 믿음이다.
    흐르는 요단강앞에 법궤를 매고 들어설때 그 강물이 쌓여섰으니 그 물을 쌓으실수 있는 전능자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을 믿을때 무슨 걱정이 있을수 있겠는가.

    이것을 믿는 믿음이라면 우리의 삶에 모든 힘든일을 강물줄기를 돌려놓으신 하나님의 역사와 같이 우리의 힘든일을 돌려놓으실수 있다.
    그것을 돌려놓으실때까지 다만 기다려야 한다.
    믿음의 힘을 표적과 증거로 받아 믿음으로 살기로 서원한 것을 갚을때다.

    교회에는 종들이, 가정에는 가장이 그런 믿음을가져야 한다.
    경제난제의 피해까지도 절대로 받지 않고 믿음으로 사는 교회, 가정으로 믿음으로 살며 주시는 하나님의 표적과 증거속에 매일매일 가는 교회와 가정이 되자.


2)말씀대로 살려고 서원한 것 갚도록 표적과 증거를 주신다.
    우리가 은혜받던 그날 우리는 하나님앞에 말씀대로 살겠다고 고백했다. 믿음으로 살겠다는 고백, 말씀대로 살겠다는 고백 그것이 하나님앞에 서원이라는 것을 잊지말자.

    된일의 말씀대로 살겠다고 고백하고 이제는 될일의 말씀 선지서와 요한계시록의 말씀같이 살겠다고 고백했다.
    그런데 하나님의 그 말씀앞에 떠는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데 그 말씀대로 살지 못했던것을 돌아보고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의 힘을 받아 이제는 말씀대로 살수있는 사람이 되자.

    그럴려면 먼저 하나님의 말씀앞에 떠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사66:2)
    선지자 이사야는 여호와의 말씀에 떠는자 그를 권고하신다 했다.
    창12:4에 아브라함이 나이 75세에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여호와의 말씀을 쫓아갈수 있었던 것은 그가 말씀앞에 떨고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떠나라면 떠났다.
    그리고 100살에 낳은 이삭을 바치라 할때 그 말씀이 두렵고 떨려서 바쳤다.

    하나님이 필요로하실때 내가 무엇이라도 바칠수 있어야 한다. 떠날수 있어야 한다. 떠나라면 떠나고 바치라면 바치고 나누라면 나누는 그것이 아브라함의 믿음이요, 아브라함이 여호와의 말씀에 떠는 사람이라는 증거이다.

    아브라함은 나이, 환경, 생활, 자신의 인생에 변화가 오는것에 상관 없이 하나님의 말씀이면 그 말씀 그대로 하는 정직한 사람, 정직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이 시대에 그런 사람을 하나님은 요구하신다. 말씀따라 축복받고 말씀따라 쫓아가는 그 길이 가장 평탄하고 안정하다.

    말씀따라 살겠다고 서원하고 그렇게 못살았지만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히12:4말씀의 힘을 받아야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하는 힘이 있다. 그 힘이 말씀을 두려워 떨게 하고 말씀따라 가게 하고 말씀대로 살게 만드시는 것이다.
    말씀대로 살지 못하던 사람을 말씀대로 살게하는 말씀의 기운이 우리속에 들어와 운동한다. 말씀대로 살게되는 그것이 표적과 증거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된 일의 말씀을 쫓아왔다. 이제는 될 일의 말씀을 쫓아가야 한다.
    우리는 미래를 향해서 왔는데 된 일의 말씀은 과거에 있었던 말씀이다.
    저 과거에 머물러 있는 된 일의 말씀을 내가 믿고 내가 미래로 향해 오므로 말씀과 자꾸 거리가 멀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 요한계시록같이 이루어지는 말씀은 우리가 미래로 가는데 자꾸 우리에게 다가오며 우리의 삶속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 말씀과 우리는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는 것이다.

    된일의 말씀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될 일의 말씀과는 점점 가까워진다.
    이제는 될일의 말씀을 바라보고 쫓아가고 될일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말씀이 이루어지는 축복이다.

    그래서 그 말씀을 심령에 이루고 성전이 되고 머리에 이루어 인침을 받고 체질에 이루어 변화체가 되고 예수님의 형상을 이루자.

    말씀대로 살도록 서원한 것 갚도록 표적과 증거를 주신다.


3)기도하기로 서원한 것 갚도록 표적과 증거를 주신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고 신령한 역사를 주시면 우리는 기도하는 사람으로 변화되왔다. 기도하는 사람으로 변화되면서 우리는 기도하기로 서원한 것이 있으면 그것을 갚아야 한다.

    우리는 그동안 살면서 작정기도를 서원한 것이 있을것이다. 40일,20일 이렇게 작정기도 서원해놓고 하루라도 못한것이 있다면 꼭 갚아야 한다.
    철야기도, 금식기도 작정한것 꼭 갚아야한다.

    우리가 해마다 송구영신예배다 1월달에 우리는 기도한다고 수없는 서원을 했다.
    기도하기로 서원한 것 갚도록 표적과 증거를 주신다.

    기도하기로 작정하고 안한 것은 죽기전에 다 갚아야 한다.
    서원한 것, 기도 소원한것 다 갚아야 한다.
    남의 기도 부탁 받아놓고 안한것도 서원한 것을 갚지 않은 것이다.

    우리가 서원한 것을 갚는다는 것은 책임있는 사람이 되는것이다.
    사람과의 약속도 지키는 것이 책임있는 사람이다.
    하나님은 이 시대에 책임감이 있는사람을 요구하신다. 하나님과 무엇을 약속하면 목숨을 걸고 지켜내는 사람을 요구하시는 것이다.

    기도하는 서원을 갚게 하시려고 기도의 힘을 표적과 증거로 넣어주신다.
    그러면 기도하면서 기도 약속도 생각나게 하신다.

    우리에게 기도가 짐이되지말고 기도가 힘이 되어야한다.
    기도의 힘, 기도의 영, 기도의 역사가 와서 기도가 힘들고 부담되지 않고 기도하는 것이 즐겁고, 힘이되고, 감사해야한다.

    기도의 맛을 알아야한다.
    기도의 맛은 내가 기도한것에 응답이 내릴때 내게 쾌감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기도의 힘은 일조일석에 되는것이 아니다. 기도가 생활화 되고 체질화되고 기도의 달인의 경지에 이르르는 것이다.
    기도의 달인은 엘리야, 사무엘 같이 기도하는 대로 되는 것이다.
    그것이 기도의 힘, 기도의 맛이다.

    기도하기로 서원한 것을 갚게하시려고 기도의 영, 기도의 힘을 주셔서 기도의 맛을 알게하시고 기도가 생활화되고 체질화되게 하셔서 기도의 달인의 경지에 이르게 하신다.

    기도해야될 사람이 기도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면 하나님이 기도하지않으면 안되는 환경을 만드신다. 그것이 하나님이 시키시는 기도이다.

    기도하기로 서원하고 못갚은 것이 있으면 그것이 금식기도, 철야기도, 새벽기도 어떤 기도라도 그것을 갚기로 작정하는 사람에게 기도의 힘, 기도의 영, 기도의 능력을 표적과 증거로 주신다.
    그러면 그 기도의 역사가 기도하는 대로 되는 역사를 부른다.


4)본이 되게 살기로 서원한 것 갚도록 표적과 증거를 주신다.
    교회에서 가정에서 본이되게 살겠다고 하나님앞에 기도한 사람이 있을것이다. 하나님 앞에 기도는 본이되겠다고 해놓고 전혀 말과 행동과 생활에 본이되지 못하게 살았다면 회개하고 지금부터라도 본이되게 살자.

    말만 강도사, 목사, 장로, 권사, 집사이지 하는 말과 행동이 하나님앞에 본이되지 못하게 살아서 복음에 유익을 끼치지 못한다면 참으로 슬픈 일인것이다.

    된일과 될일을 아울러 믿고 있으면 그 말씀의 차원이 높은 만큼 말과 행동과 행실과 믿음과 정절에 본이되게 살아야한다.
    바울은 딤전4:12에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에게 사람들에게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너는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대하여 본이되라고 했다.

    본이되게 살기를 원한다면 가장 중요한것이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최상의 말씀을 받았다면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믿는사람앞에 본이되어야한다. 먼저 말부터 본이 되어야한다.
    말하는데에부터 본이되어 하나님편의 사람이라는 본이 되어야 하겠다.

    기도, 말, 봉사, 연보, 자리를 양보하는 것, 안내, 무엇이든지 우리가 있는 곳에서 본이되는 삶을 가져야 한다.
    우리가 남을 의식해서 세수하고 머리빗고 옷을 단정히 입는것 같이 성도의 눈에, 성도의 귀에 은혜되게 하기 위해 말과 행실과 생활에서 우리모두 본이되는 삶을 살아야한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앞에 본이되게 살겠다고 수없이 서원했지만 그 서원을 우리는 또 수없이 깨며 살아왔다.
    이제는 그 서원을 갚게하시려고 내 힘으로 안되니까 그분의 힘, 그분의 능력, 그분의 전능하심을 빌려서 이제는 말과 행실과 사랑과 모든 영적 육적 생활에서 본이되게 살게 하신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이땅에 오셔서 우리에게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본으로 보여주셨다. 기도하는 것, 이 세상 땅의 것을 욕심내지 않는 것을 본으로 보여주셨다. 말씀따라 오시고 말씀따라 조용히 가신 그 분의 모습을 본으로 삼아서 우리 속에 사리사욕의 뿌리를 근본적으로 뽑아내어 본이되는 삶을 살자.

    본이 되는 그 삶은 예수의 향기가 난다.

    거기에 은혜가 감동되고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은혜가 운행한다.
    본이 되는 그 삶에 모두 만족하고 기뻐하게 된다.
    본이되는 그 삶은 절대로 남에게 상처가 되고 아픔이 되지 않는다.
    우리가 모두 본이 되게 살아야 하겠다.

    본이되지 않는 삶은 은혜를,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관계를 깨버린다.
    본이 되는 삶은 우리라는 결속된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본이되는 삶을 살자.

    이제부터는 목소리를, 자세를 낮추고 남을 존중하고 남의 인격을 존중하고 남의 말하는 것을 존중하면 복음이 더욱 빛이나며 더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우리라는 안에 들어오게 될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표적과 증거를 계속 주실 것이다.


5)물질 드리기로 서원한 것 갚도록 표적과 증거를 주신다.
    하나님앞에 물질을 서원해놓고 갚지 않으면 그 물질이 소리를 지른다.
    시15:4에 보면 서원한 것은 해로워도 갚아야 한다 했다.

    사람한테 돈을 빌리고 그 돈을 갚지 않으면 다시 그 사람에게 돈을 빌릴수 없다. 은행돈을 안갚으면 다시 은행에 돈을 빌릴수 없다.

    사람관계에서도 물질을 가져다 쓰고 갚지 않으면 다시 얻지 못하는데 하물려 하나님앞에 약속해놓고 드리지 않으면서 하나님앞에 물질 얻기를 원할수 있는가.

    그러므로 서원한 것을 갚자. 물질로 서원한 것 못갚은사람이 있다면 그것을 갚도록 표적과 증거를 주시라고 기도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이 물질드리기로 서원한 것 갚도록 표적과 증거를 주신다.
    우리는 어쩌면 하나님이 서원한 것을 갚도록 물질을 주셨는데 다른일에 썼는지도 모른다.
    그런 일은 없어야한다.
    하나님앞에 물질로 서원한 것을 절대적으로 갚아야한다.

    자녀, 자신,가족을 위한 일에는 아낌없이 쓰면서 하나님앞에 서원한 것을 갚지않는다면 하나님앞에 큰물질 받는것을 다시한번 생각해보아야한다.

    우리가 하나님앞에 서원한것을 냉정히 돌아보면 그것을 하나님이 생각나게 해주실 것이다. 하나님앞에 서원한 것이 있다면 그것을 먼저 드려야 한다. 내가 해로울찌라도 그것을 갚고자 할때 하나님이 갚아주신다.

    이뿐만이 우리가 서원한 것이 너무도 많은데 그 모든것을 성령이 오셔서 생각나게 하셔서 그 서원한 것을 빠른 시일내에 갚도록 표적과 증거를 주신다.

    1)-4)의 서원은 언제라도 갚을수 있다.
    그러나 물질을 드리기로 한것은 내가 물질이 있어야 드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앞에 표적과 증거를 구하자.
    물질서원한것 갚도록 표적과 증거를 물질을 돌려주시듯, 풀어주시듯, 기적을 주시듯, 물질도 주실수 있는 하나님이시다.

    표적과 증거를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우리의 환경도 변화시켜주시고 생활도 풀어주고 막힌물질도 뚫어주시고 닫힌물질도 열어주시고 다양한 방법으로 서원한것을 갚도록 허락하신다.


결론 : 표적과 증거를 주셔서 서원한 것을 갚게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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