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족한 것을 채워주시는 하나님. (시23:1-5)
1) 부족한 말씀을 채워주시는 하나님. (계10:8-10, 겔3:1-3)
2) 부족한 믿음을 채워주시는 하나님
3) 부족한 사랑을 채워주시는 하나님. (계2:4-5)
- 어제에 이어서……. -
4) 부족한 기도의 분량을 채워주시는 하나님. (계5:8, 계8:3-5)
기도는 아무리 많이 해도 늘 부족한데 우리의 부족한 기도의 분량을 하나님이 채워주셔야 한다.
(계5:8)금대접 : 개인의 기도분량을 채우는 그릇.
우리가 기도를 하면 그 기도는 향이 되어 올라가게 되는데
자기 자신을 위한 기도를 하면 그것이 금대접, 즉 개인의 기도분량을 채우는 그릇에 담겨지게 된다.
자신의 기도가 금대접에 아구까지 가득 찰 때에 응답이 내려지게 된다.
(계8:3-5)금향로 : 모든 성도의 기도가 합하여 분량을 채우는 그릇.
우리가 단체의 기도를 할 때에는 그 기도의 향은 금향로에 담겨져 분량을 채우게 된다.
우리의 기도가 부족하면 하나님이 부족한 기도의 분량을 채워주시는데 이는 하나님이 부족한 기도의 분량을 직접 채워주신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기도를 시키셔서 부족한 만큼의 기도를 채우도록 하여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기도를 시키시는 방법이 있는데 (사19:19-20)이사야선지는 압박과 고난을 당하게 하셔서 부르짖게 하신다고 하였다.
히브리민족이 바로로부터 압박과 고난을 당할 때에 고센 땅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었던 것과 같이 이 시대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부족한 기도의 분량을 채워주시기 위하여 압박과 고난을 당하게 하시는 것이다.
(사26:16-17)부르짖는다 함은 산기가 임박한 여인이 부르짖음 같은 간절한 기도다.
성경 가운데 하나님이 기도를 시키셨던 사람들이 있는데
(사38:1-8)히스기야에게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하여 기도를 시키셨고 히스기야 왕의 기도를 들으시고 눈물을 보시고 그 수한을 십오 년 연장하여 주셨다.
또한 사37장에서도 하룻밤 철야기도로 앗수르군대 십팔만 오천을 시체로 만드는 역사를 일으켰다.
(단6:10)다니엘은 기도하면 사자굴에 들어가게 되었는데도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변함없이 기도하였다.
이것은 다니엘이 기도의 달인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증거다.
엘리야선지자도 기도로 많은 역사를 일으켰다.
히스기야 왕이나 다니엘선지나 엘리야선지 모두의 공통점은 기도를 하지 않고는 편안할 날이 없다는 것이며 또한 하나님이 기도를 시키실 때 기도를 하기만 하면 기도의 응답이 내려졌다.
엘리야는 그리 시냇가와 사르박 과부의 집에서 기도의 분량을 채워놓았기에 갈멜산에서 불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었다.
또한 다니엘도 평소에 작정기도로 기도의 분량을 채워놓고 사자굴에 들어갔기에 아무 피해도 받지 않게 되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도의 분량을 채워주시기 위하여 기도의 영을 부어주시는데 기도의 영을 부어주시면 기도할 마음이 생기게 되고 기도할 수 있는 환경을 주시고 기도하는 체질로 만들어 주신다.
하나님이 시키시는 기도는 절대로 지루하지 않고 시간가는 줄을 모르게 되며 기도할 때에 기도의 즐거움이 생기게 된다.
이러한 기도가 생활화 되고 기도가 체질화 될 때에 기도의 달인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철야기도는 우리의 부족한 기도의 분량을 채우기에 좋다.
(사58:6-9)금식기도가 있는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을 하면 흉악한 결박이 풀어진다.
작정기도는 다니엘이 하루에 세 번씩 예루살렘을 향하여 열린 창을 열어놓고 정해진 시간에 기도하였던 것이 작정기도다.
새벽기도가 있는데 하나님의 역사가 새벽에 일어난 역사가 참으로 많으니 홍해가 갈라지는 역사, 히브리민족에게 만나가 내리던 역사, 예수님의 부활, 디베랴바닷가에서 일백쉰세마리의 고기를 잡던 역사, 히스기야 왕의 기도로 적군이 죽는 역사, 다니엘이 사자굴에서 나오는 역사가 새벽에 일어났다.
철야기도나 작정기도, 금식기도를 할 수 없다면 새벽기도라도 꼭 해야한다.
어떠한 기도든지 제대로 하기만 하면 그 기도에 큰 역사가 있다.
딤전2:1절에서 도고라고 하는 것을 중보기도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도고란 남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다.
(딤전2:5)중보기도는 중보자되시는 예수님이 인간을 위하여 기도해주시는 것이며 인간이 중보기도를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만약 딤전2:1절에서 말한 도고가 중보기도를 뜻한 것이라면 딤전2:5절에서 중보에 관한 말씀을 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인간이 중보기도란 것을 사용할 수 없도록 딤전2:1절에서 도고란 말을 사용하였고 딤전2:5절에서는 중보자는 한분이시니 곧 그리스도 예수라고 분명히 해두었다.
계5:6절에서도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 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고 하셨으니 이 또한 중보자 예수님을 뜻한 것이다.
인간이 남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도고"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인간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은 "중보기도"다.
중보자 되시는 예수님의 기도만이 중보기도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