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엘리야같이 기도하는 종. (약5:16-18)
야고보 사도는 신약 사도들 중에서는 기도를 참으로 많이 했던 사람 중에 한 사람이다.
성경 가운데 기도를 많이 했던 종들은 성경의 기록 속에서도 기도를 강조를 하는데 야고보는 자신도 기도를 많이 하는 종이지만 자신같이 기도를 많이 하라고 하지 않고 과거 엘리야같이 기도를 하라고 하였다.
우리가 엘리야같이 기도하면 엘리야 같은 역사와 엘리야 같은 기적, 엘리야 같은 축복이 따른다는 것이다.
1) 기도는 영의 호흡이다.
기도는 영적 호흡이기에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영적으로 호흡을 하지 않는다는 말과도 같다.
기도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고 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는 영의 호흡이기에 꼭 기도를 해야 하며
사무엘 선지자는 기도를 쉬는 것은 죄라고 하였으니 우리가 기도를 꼭 해야 하는 것이다.
사람이 살았다고 하는 것은 숨을 쉬는 것으로 판단하는데
우리가 영적으로 살았다고 하는 것을 기도하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기도는 영의 호흡이기 때문에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은 영적으로 강건하다.
영적으로 강건한 사람은 말씀이 올 때에 그 말씀을 영의 양식으로 잘 먹고, 은혜가 오면 그 은혜를 성령이 생수로 잘 마시게 되는 것이다.
영의 사람에게 생명은 기도다.
2) 기도는 하나님과 교통하는 통로다.
기도라고 하는 이 통로를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과 영적 교통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일수록 하나님과 영적 교통이 많아졌고 하나님과 영적 관계가 깊어졌다는 것을 말한다.
3) 기도는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무기다.
기도는 들고 다녀야 하는 것도 아니고 경비가 드는 것도 아니면서 눈에 보이지도 않고 가장 강력한 무기다.
지렁이같이 미약하기는 해도 기도라고 하는 최고의 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4) 기도는 사람과 생활을 변화시킨다.
기도를 시작하면 가장 먼저 회개와 감사를 하게 되니 기도하는 사람은 악해질 수가 없다.
변화되는 것에 정도차이는 있겠지만 기도하는 사람은 변화되게 된다.
기도하면서 양심의 가책을 받고 자신을 돌아보며 그 생활이 변화되고 또 회개와 감사를 통해 변화되며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할 때 그 기도의 응답으로 타인까지 변화되는 것이다.
그러나 중보기도는 잘못된 것인데 사람은 중보기도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중보자는 예수님이요 중보 기도는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부인할 것이지만 내가 너를 위하여 기도해 놓았다고 하셨다.
그 말씀대로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지만 예수님이 기도해 주신 덕분에 다시 돌이켜 은혜시대 종으로 쓰여졌다.
반대로 가룟유다는 차라리 나지 아니하는게 나을 뻔 했다고 하였으니 예수님께서 가룟유다를 위해서는 기도해주시지 않았다.
그 말씀대로 가룟유다의 결말은 비극을 맞이하게 되었다.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판 죄나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죄나 경중을 따질 수 없으나 예수님이 기도를 해주시느냐 해주시지 않느냐에 따라 생사가 갈라진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은 아니지만 기도를 하면 기도로 자신이 변화되고 기도는 타인을 변화시키고 기도는 생활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5) 기도는 영권자를 만드신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을 영권자로 만드신다.
영권이라고 하는 것은 과거 엘리야가 받았던 권한이다.
축복권 - 사르밧 과부의 집에 가루독에 가루와 기름 병에 기름이 다하지 아니하리라 하고 축복한 것같이 가뭄이 다하여 추수한 곡식을 먹기 까지 가루독에 가루와 기름 병에 기름이 다하지 아니하였다.
저주권 - 오십부장과 오십인이 두 번이나 엘리야를 잡으러 왔지만 엘리야가 기도하니 불이 내려 이들을 모두 불로 죽였으니 이것이 저주권이다.
생명권 - 사르밧 과부의 아들이 죽었을 때 그 아이를 위하여 이 아이의 영혼으로 돌아오게 하소서 하고 기도할 때에 그 영혼이 다시 돌아와 아이 속에 들어가 살아나게 하였다.
살상권 - 엘리야가 바알선지 450인을 잡아다가 기손 시내에서 모두 목을 쳐 죽였다.
사무엘도 사울 왕이 죽이지 않고 데리고 온 아말렉 왕 아각을 쪼갰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