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척량받은 종이 다시예언한다. (계11:1-2)
계11:1절은 척량받은 사람을 말씀하고 있고
계11:2절에서는 척량받지 못한 사람을 말씀하고 있는데
척량받은 사람은 다시예언하는 종으로 쓰여지지만 척량받지 못한 사람은 성전 밖 마당같이 이방인에게 내어주어 마흔두 달 동안 짓밟히게 한다고 하였다.
이방인에게 짓밟힌다는 것은 계13장에 수정통치 시대를 말씀하는 것인데 예수님의 재림 후 삼년 반 동안 수정통치 시대가 있게 될 때 마흔 두 달 동안 척량받지 못한 사람을 수정통치 시대에 들어가게 하여 이방인에게 짓밟히게 한다는 것이다.
지팡이 같은 갈대란 곧은 말씀, 진리의 말씀, 기준이 되는 말씀, 이 시대에 주신 될 일의 말씀이며 이 말씀으로 우리를 척량하시는 것이다.
사13:4절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이를 검열이라고 하였다.
1) 심령에 성전이 이루어졌는지 척량한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교만한 산을 쌓을 수도 있고 바벨탑을 쌓을 수도 있고 성전을 쌓을 수도 있다.
과거 솔로몬 성전을 최고로 아름답고 화려하게 지은 후 법궤를 들일 때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해지는 역사가 있었지만 그 민족이 하나님을 멀리하고 만홀히 여기며 하나님의 법을 지키지 않고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무시하고 마음대로 사니까 하나님이 이방 바벨론을 불러들여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도록 성전이 무너지게 하셨다.
또한 모든 금과 은의 모든 그릇들을 바벨론으로 모두 가져가게 하셨으니 하나님이 허락하신 역사였다.
지금의 교회들이 유형적인 성전을 더 크게 더 아름답게 더 높게 짓기 위하여 애쓰지만 마지막 때에 다시예언할 종은 유형적인 성전이 아니라 심령에 성전을 이룬 종을 쓰신다.
고전3:16절에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하였고
슥4:2절에 순금등대가 심령의 성전이라고 하였고
계1:20절에 사도요한은 일곱 금촛대가 심령의 성전이라고 하였다.
심령의 성전을 이룬 종을 계11:1절같이 척량하여서 척량에 합격하면 계11:3-6절같이 두 증인의 권세를 주어 다시예언하는 종으로 쓰신다.
심령에 교만한 산이 무너지고 혼잡한 바벨탑이 무너져서 평지를 이루면서
될 일의 말씀이 바탕이 되고 진리가 기초가 되며 머릿돌 되시는 예수님을 심령에 모실 때 슥4:7절같이 은총이 내려져서 슥4:6절같이 신으로 되는 역사 속에 심령에 성전을 이루게 된다.
심령에 성전을 이룬 사람은 슥4:1절같이 자던 잠에서 깨어나게 되는데 잠에서 깨어난다고 하는 것은 깨달음이 생겨서 전에 알지 못하던 것을 알게 되고 전에 깨닫지 못하던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시122:1-6절같이 심령에 성전은 수많은 말씀과 진리가 조밀하게 이루어져 완성되며 말씀이 그 사람을 붙들기에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려 정도로, 정로로만 가게 하신다.
또한 심령에 악한 것을 두고는 성전을 이룰 수 없기에 말씀과 진리로 심령에 성전을 완성했다면 악한 것이 올라올 수 없다.
2) 심령에 제단이 이루어졌는지 척량한다.
지금이 성전에 강단이 있듯이 과거의 성전에는 제단이 있었는데 계11:1절에 성전이 이루어진 사람은 그 안에 제단을 이루어야 한다.
사19:19-20절에 이사야 선지자는 부르짖는 제단이라고 하였는데 사26:16-17절에 부르짖음이란 간절한 기도라고 하였다.
히브리민족이 애굽에서 종살이하면서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한 구원자 보호자 모세를 보내어 열 가지 재앙으로 표적과 증거를 나타내며 출애굽 역사를 이루게 하셨고 가나안 땅에 나라를 이루게 하셨다.
이 시대에도 심령의 성전이 이루어진 종이 부르짖고 기도하면 표적과 증거를 주셔서 압박과 고난 가운데 자유함을 얻게 하신다.
3) 경배하는 자가 되었는지 척량한다.
과거의 성전에 아무리 제단과 제물이 있어도 제사장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릴 수가 없는 것같이 우리의 심령에 성전과 제단이 이루어졌다면 그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 앞에 자신이 경배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사11:3절에 이사야 선지자는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는다고 하였는데 심령에 성전과 제단이 이루어진 사람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저절로 즐거워진다.
즐거워서 하는 일에는 그 일에 기적이 일어난다.
결론 : 다시 예언할 종들을 검열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