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곱을 깨우치시는 역사. (암7:1-3)
깨우치시는 역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알게 하시는 것이며 분별하지 못하던 것을 분별하게 하시는 것이다.
선지서를 보면 여호와께서 네가 이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겠느냐고 물으실 때 주께서 아시나이다 하고 대답하면 그것에 대한 것을 깨우쳐 주셨다.
1) 왕이 누구인지 깨우치는 역사. (계17:14, 계19:16)
왕은 한 나라를 다스리는 통치자를 말하는데 본문의 왕은 계17:14, 계19:16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만왕의 왕 만주의 주, 즉 계11:15절같이 천년왕국 그리스도의 나라를 다스리실 통치자 예수님이다.
2) 첫 번째 풀을 베셨다는 것을 깨우치는 역사. (계8:7)
암7:1-3절에 보면 왕이 첫 번째 풀을 벤 후에 두 번째 풀이 움돋는 것을 보여주셨다.
풀은 양의 꼴, 하나님의 말씀인데 첫 번째 풀이란 것은 고전15:3-4절에 된 일의 말씀으로 예수님의 탄생, 십자가 부활, 승천에 관한 말씀이다.
이러한 첫 번째 풀을 왕이 베신다는 말씀은 계8:7절에서 첫째 천사가 나팔을 불면서 사회주의 혁명운동으로 푸른 풀이 타서 사위는 역사로 성취되었다.
이는 1917년 10월 공산주의가 등장하면서 일어난 사회주의 혁명운동이며 이로 인해 은혜시대의 종말과 함께 환난시대의 시작이 이루어진 것이다.
3) 두 번째 풀이 움돋는다는 것을 깨우치는 역사. (계9:1-4)
첫 번째 풀이 된 일의 말씀이라면 두 번째 풀은 될 일의 말씀으로 첫 번째 풀이 베였어도 그 뿌리는 남아서 두 번째 풀이 자라나게 되는 것이다.
사도요한은 두 번째 풀, 될 일의 말씀을 계1:1절에 반드시 속히 될 일, 계1:19절에 장차 될 일, 계4:1절에 마땅히 될 일, 계22:6절에 결코 속히 될 일이라고 하였다.
될 일의 말씀은 앞으로 오게 될 환난, 예수님의 재림, 세상의 심판, 천년왕국, 무궁천국으로 이루어지는 말씀이다.
두 번째 풀이 움돋기 시작할 때 황충이가 함께 등장하여 땅의 풀을 다 먹으려고 하자 야곱이 “주 여호와여 청컨대 사하소서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떻게 서리이까”하고 기도하니 여호와가 뜻을 돌이켜 이루지 않으셨다고 하였다.
이는 계9:1-3절같이 황충이가 등장하였으나 계9:4절에 풀이나 푸른 것이나 각종 수목은 해하지 못하게 하시는 역사다.
첫 번째 풀이 나올 때는 황충이가 등장하지 않지만 두 번째 풀이 움돋을 때 등장하여 두 번째 풀에 피해를 주는 존재다.
즉, 기독교가 된 일의 말씀으로 시작할 때에는 왕이 풀을 베기까지는 거침없이 장성하지만 왕이 첫 번째 풀을 베고 나서 두 번째 풀이 움돋기 시작하면 황충이가 함께 등장하여 역사하므로 하나님의 역사가 필요한 때이다.
4) 시대에 맞는 기도를 하라고 깨우치는 역사. (암7:1-3)
왕이 베신 첫 번째 풀이 건초가 되는 것을 생초로 바꾸지 못하고 두 번째 풀이 왕성하게 자라나는 것을 누가 막지 못한다.
성경 가운데 엘리야나 다니엘은 열악한 환경 속에 있었지만 기도를 쉬지 않으므로 승리할 수 있었고 그 시대 최고의 지도자가 되었다.
5) 풀뿌리가 예수님이라는 것을 깨우치는 역사. (미5:2, 사11:1, 계22:16)
첫 번째 풀이 풀뿌리 없이 날 수 없고 두 번째 풀이 움돋을 수 있었던 것도 풀뿌리가 보존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즉, 첫 번째 풀이나 두 번째 풀의 뿌리는 모두 그 근본이 예수님이다.
미5:2절에 베들레헴에 나신 예수그리스도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 하셨고
사11:1절에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신다고 하였다.
계22:16절에서는 다윗의 뿌리, 다윗의 자손이라고 하였는데 요1:1절에 말씀으로 계시던 예수님이 요1:14절에서 말씀이 육신이 되셨으니 예수님은 신성과 인성을 겸비하신 분으로 다윗의 뿌리란 말씀으로 계시던 신성 예수님, 다윗의 자손이란 인성 예수님이다.
풀뿌리 되시는 예수님은 베어진 첫 번째 풀이 아닌 움돋고 있는 두 번째 풀에 힘을 실어주시며, 두 번째 풀 또한 풀뿌리 되시는 예수님의 진액을 받아 자라나게 되는 것이다.
결론 : 황충이의 피해를 받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