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시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암3:7)

2009/6/26 금요 철야 설교 ▣ 새 타작기계로 쓰실 종. (사41:14-15)

▣ 새 타작기계로 쓰실 종. (사41:14-15)

    하나님이 쓰시는 종은 두 가지인데
    씨를 뿌리는 종으로 쓰시는 사람도 있고
    알곡을 거두어 드리는 추수하는 종으로 쓰시는 종도 있다.
    여기서 종이라 함은 목사라는 직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상전되시는 하나님의 명령만을 따르는 사람을 뜻한 것이다.



1) 새 영과 새 마음을 주신 종. (겔36:26-27)

    하나님이 새 타작기계로 쓰실 뜻이 있는 종에게는 그 마음속에다가 새 영과 새 마음을 주시는 역사를 먼저 주신다.

    새 영.

    새 영이란 하나님이 주시는 영인데 이것을 다양하게 선지자들과 사도요한이 예언을 하였다.
    다니엘선지는 거룩한 신들의 영이라고 하였으니 새 영을 우리에게 넣어 주신다 함은 과거 다니엘에게 주셨던 것과 같이 거룩한 신들의 영을 주신다는 것이다.
    베드로 사도는 영광의 영이라고 하였고
    사도요한은 진리의 영이라고 하였으며 선지자들의 영, 대언의 영이라고 하였으며
    이사야선지는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이라고 하였고
    사도요한은 요한계시록에서 일곱 영이라고 하였다.


    영은 하나인데 그 활동하는 역사가 다양한 것이며
    이러한 영들을 선지자 에스겔이 예언한 새 영으로 부어주시는 것이다.
    은혜시대에는 보혜사 성령을 부어주셨으니 보혜사 성령을 받으면 거듭나고 중생하고 은사를 받았다.

    다니엘에게 거룩한 신들의 영이 오니까 느부갓네살 왕이 꾼 꿈을 알려주지 않아도 찾아내어 해석까지 하였고 사자라도 다니엘을 해하지 못하였다.

    영광의 영이란 예수를 믿거나 전하거나 주의 일을 하는데 있어서 고난이 많고 핍박이 많은 사람에게 주시는 영광의 영인 것이다.

    또한 사도요한은 미혹의 영과 진리의 영을 말하였으니 진리의 영을 받으면 성경이 환하게 알아지게 된다.

    계22:6절에서 말한 선지자들의 영이 우리 속에 들어오면 성경에 예언, 될 일을 환하게 알게 되고 될 일의 말씀이 입에서 자유롭게 나오게 된다. 이렇게 만들어 주시는 역사가 선지자들의 영이다.

    대언의 영은 선지자들의 영과 같은 역사가 있는데 요한계시록을 기록하게 하고 증거하게 하는 영이 대언의 영이다.

    사4:4절에서 이사야선지가 말한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을 받으면 새 타작기계로 쓰여질 사람의 인간성 죄악성, 육신의 소욕, 사리사욕을 다 죽여주신다.
    이러한 영의 역사로 심령의 변화가 일어나면 사람이 변화된다.

    계4:5, 계5:6절에서 말한 일곱영은 일곱가지 영이라는 말이 아니라 완전케 하는 성령의 역사를 일곱영이라고 한 것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새 영을 받지 못하면 귀신의 영이 들어오게 되는데
    (계16:13-14)귀신의 영은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선지자의 입에서 나오게 된다.
    계18:1-3절에서는 귀신의 영이 역사하여 이 세상은 이미 귀신의 처소가 되었다고 하였다.

    귀신의 영이 들어온 사람은 사치하게 되고 음란하게 되고 자기 향락에 도취되게 되고 자기 영화를 누리며 부의치부를 만들며 오락, 도박, 술취함, 방탕함, 마약까지 하게 된다.

    이러한 시대에 새 타작기계로 쓰실 종에게는 귀신의 영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새 영을 부어주신다.
    새 영을 받은 사람은 심령이 살아나고 찬양이 살아나고 기도가 살아나고 감사가 살아나고 표정이 살아난다.

    하나님의 역사는 말씀을 따라서 역사하기에 새 영에 관한 말씀을 전할 때 그 말씀따라 새 영이 내리고, 새 영에 관한 찬양을 할 때 새 영이 내리고, 새 영을 구하고 기도할 때 새 영이 내리는 것이다.

    새 영을 받은 종들이 사업장에 가든지 직장에 가든지 가정에 가든지 그 종의 역사로 귀신의 장난이 물러나는 역사가 있어야 한다.
    그렇기에 영적 가장이 바로 서야 하고 교회에서는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서야 한다.


    새 마음.
    새 마음은 (빌2:5)예수님의 마음인데 새 타작기계로 쓰실 종의 마음에다가 예수님의 마음을 넣어 주신다.

    예수님의 마음은 사랑하는 마음이다.
    양이 실수와 부족이 있어도 목자는 그것을 감싸주고 용서해줄 수 있는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용서하는 마음이다.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용서도 할 수 있다.

    순종하는 마음이다.
    사람들은 죽으라고 하면 죽는 시늉까지만 할 수 있지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 죽으라고 하시니 죽으셨다.

    희생하는 마음.
    한 알의 밀알같이 땅에 떨어져서 희생하는 마음이 예수님의 마음이다.

    겸손한 마음.
    하나님의 아들로 오셨지만 한번도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내세우시지 않았다.
    주의 종이라는 권위를 가지고 성도들을 누르려고 하고 자신의 마음대로 하려고 한다면 이는 예수님과 반대되는 마음이며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는 마음이 아니다.


    새 영과 새 마음이 들어오면 그 마음이 자꾸 좋아져서 자꾸 감사가 나오고 기도가 나오고 찬양이 나오고 충성하고 싶고 봉사하고 싶고 연보하고 싶고 교회에 자꾸 가고 싶어지고 사리사욕이 자꾸 죽어진다.
    이러한 현상이 자신 속에서 계속 일어나야만 새 영과 새 마음을 계속해서 받고 있다는 증거다.
    자신의 상태를 말씀에 비추어서 돌아보아야 한다.
    누구도 완벽한 사람이 없기에 누군가가 자꾸 눈에 거슬리고 마음에 안 좋은 마음이 생긴다면 이는 그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



2) 새순 같은 종을 만드신다. (슥3:8, 슥6:12)

    새 영과 새 마음을 우리에게 주시면 우리 자체가 새 순같은 종이 된다.
    새 순같은 종이란 새로운 종의 등장이다.

    스가랴선지가 본문의 말씀을 기록할 때에 히브리민족이 범죄하고 타락하여 바벨론의 침공으로 예루살렘이 황폐해지고 솔로몬 성전이 무너지게 하셨지만 칠십년 후에 여호수아, 스룹바벨, 학개를 새로운 종으로 세우셔서 쓰셨다.

    이와 같이 우리 시대에도 이천년 동안 기독교가 고목같이 되었지만 여기서 새 영과 새 마음을 받은 새순같은 종이 나온다는 것이다.
    내적을 외적으로 장애와 장벽이 있다고 하여도 새 영과 새 마음을 받은 종들은 그러한 것들을 새순같이 박차고 나오게 된다.

    목회자는 목회자로서의 성품과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그 근본이 바뀌어야 한다.
    우리가 이 시대에 새 타작기계같은 종이 되기 위해서는 새 영과 새 마음을 받아 성품과 마음이 바뀌어진 새 순같은 종으로 바뀌어져야 한다.



3) 새 힘을 주신 종. (사40:29-31)

    새 힘은 밥을 먹고 좋은 약을 먹어서 오는 힘이 아니다.

    새 힘이 오면 지치지 않는데 기도하다가 찬양하다가 예배드리다가 주의 일을 하다가 지치지 않는다.
    새 힘이 오면 무능해지지 않고 유능해지는데 아무리 유능한 사람도 피곤하고 지치면 아무 일도 할 수 없기에 새 힘을 받아야 한다.

    새 순이 꽃샘추위와 두꺼운 나무 가죽이라도 뚫고 나올 수 있는 힘을 가진 것같이 새 힘을 받아야 한다.
    뿌리로 올라온 진액을 받은 그 새 순이 나오는 것이 바로 생명력이다.

    말세의 사명자, 새 타작기계로 쓰실 종에게 새 힘이 없다면 생명력이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찬양할 때, 기도할 때, 설교할 때, 봉사할 때 새 힘이 나와야 한다.

    여호와를 앙망하는 종에게 새 힘을 내려주시되 생명력이 있는 말씀이 은혜의 힘, 사랑의 힘, 기도의 힘, 믿음의 힘, 능력의 힘, 소망의 힘으로 오게 된다.



4) 새 일을 나타내는 종이 되게 하신다. (사43:18-20)

    하나님이 이 시대에 새 타작기계로 쓰실 종은 과거에 있었던 일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한번도 나타내시지 않은 새 일을 나타내게 하신다.

    새 일이란 앞으로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이 세상을 심판하시고 천년왕국 그리스도의 나라를 이루시는 일을 말함인데 새 타작기계로 쓰실 종을 이러한 새 일을 나타내는 종으로 쓰신다는 것이다.



5) 새 타작기계로 쓰신다. (사41:14-15)

    새 타작기계가 되려면 지렁이가 되는 과정을 겪어야 하는데
    지렁이같이 된다고 한다는 것은 가장 미약하고 가장 연약하게 되는 것이다.

    지렁이 같은 종을 만드시는 이유는 교만하지 못하도록 하시기 위함이며 자기의 힘을 의지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며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지하게 하기 위함이다.
    자신이 교만하지 않고 자기의 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지한다면 이는 지렁이 같은 종이 됐다는 것이다.
    새 타작기계로 쓰여지는 것은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가능한 일이다.



결론 : (계2:17, 계14:3)새 이름을 받아 새 노래를 부르게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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