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루살렘을 사랑하라 형통하리라. (시122:6)
다니엘은 하루에 세 번씩 예루살렘을 향한 창문을 열어놓고 늘 기도했으니 모든 믿음과 축복, 은혜의 근원은 예루살렘인 것이다. 행1:8에도 성령의 권능을 받으면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라고 하셨으니 예루살렘이 복의 근원이었던 것이다. 다니엘이 사모했던 예루살렘이나 행1:8절에서 말한 예루살렘은 육적 예루살렘인데 이제 육적 예루살렘 축복이 영적 예루살렘 축복으로 옮겨졌으니 우리가 선진들이 행했던 것처럼 영적 예루살렘을 사랑하면 형통해진다. 1) 진리의 성읍 예루살렘을 사랑하라 형통하리라. (슥8:3)
요14:6절에서 예수님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셨으니 진리는 예수님이며 생명이니 우리가 진리를 사랑한다 함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예루살렘이라면 진리만이 존재해야 하고 비진리는 존재해서는 안되는데 이러한 진리의 성읍 예루살렘을 우리의 심령에 이루어야 한다. 심령의 성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마음속에 교만한 산이 있거나 황폐해져 있어서는 안되며 이런 사람은 심령에 기쁨이 없다. 비진리가 떠나가고 진리가 내 마음에 완성하면 그곳이 예루살렘이며 복음의 근원이 되고 진리되시는 예수님이 계시기에 늘 기쁘고 감사가 넘치고 평안하다. 진리의 성읍 예루살렘을 이루었다면 심령에서 저절로 희열이 올라온다. 심령에 벽돌을 한켸한켸 쌓아 올리듯 말씀과 진리를 하나하나 쌓아 올려 황폐한 성읍을 진리의 성읍으로 이루어야 한다. 진리를 가득 채워서 비진리가 존재하는 않는 심령의 예루살렘, 진리의 성읍을 이룬 사람은 입만 열면 진리가 나온다. 진리의 성읍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에게 형통함을 주시는데 형통이라고 하는 것은 나와 하나님 관계가 원활해지는 것이다. 내가 찬양하면 하늘이 열리고, 기도하면 응답이 된다. 2) 택함입은 예루살렘을 사랑하라 형통하리라. (슥3:1-2)
우리가 사람으로부터 견제를 받고 모함을 받는 것은 하나님이 특별히 그 사람을 인정하시기 때문이다. 바벨론 칠십년 포로생활을 청산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스룹바벨 성전을 건축하였는데 그 일에 가장 큰 공로를 세운 사람 중에 한 명이 대제사장 여호수아다. 그러므로 사단이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우편에 붙어서 계속해서 역사했는데 얼마나 역사했는지 여호수아가 불에 그슬린 나무같이 되었다고 하였다. 사단으로 인해서 그슬리고 시련은 있지만 2절에 여호와가 우편 사단을 책망하셔서 떠나가게 하시니 사단이 붙어서 역사하는 것도 기한이 있으며 그 기한이 차면 여호와가 사단을 책망하여 쫓아주신다. 욥도 사단이 와서 역사할 때가 있는가 하면 때가 되니 하나님이 사단을 쫓아주시고 갑절의 축복을 주셨고 그 결말이 아름다웠다. 사람들이 볼 때는 그가 다시 일어설 수 없을 것 같이 친구들도 와서 쓸대없는 변론을 하고 아내도 저주를 하며 떠났으나 하나님이 사단을 쫓아주시니 그는 갑절의 축복을 받았다. 마4:1-11절에서는 사단이 예수님에게까지 붙어서 역사했는데 결국 책망을 받고 쫓겨 갔다. 우리에게 사단의 역사가 있다는 것을 나쁘게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마귀의 역사가 강할수록 주의 역사는 더 강하게 역사하여 주시는 것이다. 진리의 성읍 예루살렘을 심령에 이루면 택함을 입었기에 아무리 사단이 역사해도 요동하지 않는다. 불택자에게는 애초에 사단이 역사하지 않으며 택한 사람이기에 역사하는 것인데 과거 베드로가 삼천 명, 오천 명씩 사람을 살릴 종이기에 사단이 계집종을 통하여서도 역사했던 것이다.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특별한 종이기에 사단이 얼마나 역사했는지 그슬린 나무같이 되었지만 그 심령 속은 도리어 견고해진다. 심령에 진리의 성읍을 이루는 것이 형통이며, 자신이 택함 입었다는 것을 깨닫고 사단의 역사를 이겨내는 것이 형통이다. 3) 여호와의 말씀이 나오는 예루살렘을 사랑하라 형통하리라. (사2:2-3, 미4:1-2)
암8:11-13절에서 아모스 선지자는 마지막 때에 사람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찾아서 비틀거리며 왕래하지만 여호와의 말씀을 찾지 못하는 때가 온다고 예언하였다. 복음서는 "예수께서 가라사대", 바울서신은 "나 바울이 친필로 쓰노니"하며 시작하지만 선지서의 말씀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하고 기록되었으니 여호와의 말씀이란 성경책을 말씀한 것이 아니라 선지서의 말씀을 말한 것이다. 애굽에 칠년 흉년이 들었을 때에 양식을 구하려면 요셉의 창고로 가야 했다. 말일에도 사람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찾으려고 달려 왕래하되 얻지 못하고 여호와의 말씀이 나오는 예루살렘으로 모이는 자만이 여호와의 말씀을 받게 된다. 여호와의 말씀이 없는 시대에 여호와의 말씀이 나오는 곳이 있다면 그곳에 만방이 몰려들게 된다. 여호와의 말씀을 영의 양식으로 받으면 마음이 든든해지고 영력이 와서 찬양이 나오고 기도가 나오고 감사가 나오고 마귀를 이길 수 있는 능력이 저절로 생기는 것이다. 말씀을 영의 양식으로 만족히 먹지 못하면 영이 힘을 잃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예루살렘에서 나오는 여호와의 말씀을 영의 양식으로 만족히 먹으면 심령에 공허가 물러가고 힘을 얻게 된다. 4) 성령의 생수가 흐르는 예루살렘을 사랑하라 형통하리라. (슥14:8)
요7:37-39절에서 생수는 믿는 자가 받을 성령이라고 하였다. 암4:7-8절에 아모스 선지자는 추수하기 석 달 전에 어떤 성읍에는 비가 내리고 어떤 성읍에는 비가 내리지 않는다고 하였으니 비가 내린다는 것은 성령의 은혜가 내린다는 것이고 비가 내리지 않는다는 것은 성령의 은혜가 내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읍은 크게 교회이고 적게는 자신의 심령이다. 비 내리는 성읍에 있는 사람은 열매를 맺고 비 내리지 않는 성읍에 있는 사람은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된다. 두세 성읍 사람들이 물을 구하려고 왕래하는데 이 때에 물을 만나지 못하면 계8:10-11절같이 쑥물을 만나게 되는데 렘23:15-16절에서 예레미야 선지자는 쑥물을 여호와가 주시지 않은 말씀을 자기 마음대로 전하는 거짓선지의 사악한 교훈이라고 하였다. 생수를 마신 사람은 자신의 심령이 살아나고 신앙이 살아나고 기도가 살아나고 찬양이 살아나고 기쁨이 살아나고 영적인 모든 것들이 소생된다. 그러나 쑥물을 마신 사람은 영적으로 가라앉아서 영이 흐려지고 답답해지고 피곤하고 졸리고 찬양이 안나오고 기도가 안나오고 교회에 가도 기쁨이 없고 설교를 들어도 아무 감각이 없게 되는 것이다. 어느 종도 자신이 거짓선지자라고 말하는 종도 없고 자신이 전하는 것이 쑥물이라고 말하는 종도 없지만 성경에서는 쑥물을 전하는 종이 나오고 그 쑥물을 먹고 죽는 성도들이 나온다고 말씀하고 있으니 우리가 영적으로 쑥물과 생수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영적으로 쑥물을 마신 사람은 영적의욕을 상실하지만 성령의 생수를 마신 사람은 영적의욕이 살아나게 된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속에 들어오면 안 좋은 일이 와도 좋은 쪽으로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은혜가 떨어지면 아무리 좋은 축복이 와도 원망이 나온다. 5) 보호가 있는 예루살렘을 사랑하라 형통하리라. (사31:5)
예루살렘은 진리의 성읍이기에, 택함을 입었기에, 성령의 생수가 흐르기에, 말씀이 나오기에 임마누엘 날개로 예루살렘을 보호하시고 지켜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지켜주시니 고난은 있어도 절대로 패배하지 않는다. 우리가 잘못하고 받는 고난은 보응으로 당연히 받아야 하지만 잘못하지 않고 받는 고난은 복이 되기에 기쁨으로 받아야 한다. 말씀과 은혜는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하고 넉넉하게 하고 풍성하게 하고 향기 나게 한다. 결론 : 예루살렘이여 영원하라! |
no. | 제목 | 조회수 | 작성일 | |
---|---|---|---|---|
공지 | 51352 | 2024년 8월 27일 | ||
공지 | 63947 | 2024년 8월 9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