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의 인 맞은 종 십사만 사천. (계7:1-4) 할례의 인.
율법시대에는 할례의 인을 쳤는데 창17:9-14절같이 아브라함의 혈통으로 태어난 남자에게는 난지 팔일 만에 할례로 그 몸에 인을 쳤다.
이는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에 언약의 표징이라고 하셨다.
할례의 인으로 언약의 표징을 받은 히브리민족의 남자들은 하나님의 선민,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으로 자부심을 가지고 살았으나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므로 버림을 받게 되었다.
성령의 인.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후에 오순절 마가다락방에 성령이 임재하시면서 할례의 인은 의미가 없어지고 성령의 인을 마음에 쳐주셨다.
성령의 인침이 시작되면서 할례의 인은 폐지가 된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은 아직도 할례로 인을 치고 있지만 그들이 먼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므로 그 언약은 사실상 파기된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의미가 할례로 인을 치는 유대인에게만 국한되어 있었으나 하나님의 선민이라고 하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고 그들이 그 피값을 자기들의 머리 위에 돌리라고 외쳤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선민이라는 의미를 바꾸셔서 예수님을 믿는 자가 하나님의 백성, 선민이 되게 하신 것이다.
엡1:13절같이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 믿으며 약속하신 성령, 오순절에 내린 보혜사 성령을 받은 사람 마음에 인을 쳐주신다.
고후1:22절에는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다고 하였고
고후5:5절에는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자부심을 가졌던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귀신의 왕 바알세불이라 하며 십자가에 매달아 죽였다.
그러나 성령의 인침을 받은 사람마다 그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구주 예수님으로 믿어지게 되는 것이다.
마음에 성령의 인침이 있는 사람은 영혼구원의 보증을 해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인.
요6:27절에 인자도 하나님이 인치신 자라고 하였다.
겔9:3-6절에서 에스겔 선지자가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를 하고 긍휼도 베풀지 않고 치는 역사가 있을 때에 이마에 표있는 자에게는 가까이도 하지 말라고 예언하고 있다.
계7:1-4절에서 사도요한은 하나님의 인을 이마에 쳐주시는데 그 수가 십사만 사천이라고 하였다.
성령의 인침을 마음에 맞을 때도 엡1:13절에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 믿어 약속의 성령을 인치심을 받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복음은 마24:14절같이 천국복음을 말씀한 것이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하나님의 인을 이마에 맞을 사람은 선지서와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알아야 하는데 이를 복음으로 말하면 계14:6절같이 영원한 복음이다.
성령의 인침을 마음에 받으면 믿음의 생기면서 마음의 변화, 심령의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데 사람들이 성령의 인침을 받고도 마음의 변화, 심령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은혜를 제대로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유대인이 할례의 인침을 받고 자신들이 선민이고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부하는 것이 나중에는 자만심이 되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밖게 되었다.
우리가 성령의 인침을 통해서 마음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면 유대인과 똑같은 절차를 밟게 되는데 히6:4-8절의 말씀같이 성령의 인침으로 하늘의 은사를 맛본 사람이 타락하면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밖아 현저히 욕을 보였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가시와 엉겅퀴는 에덴동산에서 인간을 쫓아내면서 땅을 저주하니 가시와 엉겅퀴가 나왔다. 이러한 가시와 엉겅퀴가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 마지막은 불사름이 된다고 하였다.
예수를 버리고 술 마시고 범죄하는 것만이 타락이 아니라 사3장 같은 생활을 하는 사람도 타락한 것인데 전반적으로 타락하는 사람도 있지만 부분적으로 타락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성령의 인을 마음에 쳐주시면 믿음이 생기고
하나님의 인을 이마에 쳐주시면 사상이 바로 되니 절대성이 따르게 된다.
사상은 정신문제요 정신은 생각의 차이며 이는 혼의 역사다.
성령의 인침으로 마음의 변화, 하나님의 인침으로 정신의 변화가 와야 마음으로 예수를 믿고 절대적인 사상으로 복음을 위해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복음의 절대성이 있으면 복음을 위해서 자신의 생명까지라도 내어 놓을 수 있게 되고 이 사람이 하나님의 인침을 이마에 맞게 되는 것이다.
마음이 원해도 생각에 절대성이 없으면 실행할 수 없게 되는 것이기에 생각이 그 사람의 삶을 지배한다.
사13:4절같이 그 사람의 사상을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철저히 검열하여서 하나님의 인을 쳐주시는데 말씀이 들어오면 그것을 고치고 버릴 것을 버리고 고칠 것을 고치면서 인 맞은 종의 반열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1) 여호와의 신을 머리에 부어주신다. (욜2:29-30, 사11:2-3, 사59:19-20, 사61:1)우리의 잘못된 정신과 생각을 바로 잡아주시기 위하여 여호와의 신을 머리에 부어주신다.
하나님의 인 맞을 종으로 하나님의 예정이 있는 사람이 잘못된 정신과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고난의 풀무 속에 집어넣으시니 이런 일을 당하기 전에 먼저 깨닫고 바른 정신을 가져야 한다.
욜2:29-30 여호와의 신을 남종과 여종이 될 사람의 머리위에 부어주신다.
사11:2-3 여호와의 신을 부어주시는데 지혜의 신, 총명의 신, 모략의 신, 재능의 신, 지식의 신,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으로 부어주신다.
사59:19-20 여호와의 신을 하수같이 부어주셔서 모든 죄과가 떠나가게 하신다.
사61:1 여호와의 신을 부으셔서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신다.
욜2:29-30절에서는 여호와의 신을 받을 대상을 말하였고
사11:2-3절에서는 여호와의 신에 대한 존재성을 말하였고
사59:19-20절에서는 여호와의 신을 붓는 방법을 말하였고
사61:1절에서는 여호와의 신을 받은 종의 사명을 말하였다.
지금은 우리가 복음의 절대성이 있다고 하여도 그 실상은 자기중심으로 살고 있는데 여호와의 신을 부어주신 사람은 온전한 하나님 중심으로 살게 된다.
우리가 중생을 하였어도 죄인의 껍질을 벗지 못하고 있지만 여호와의 신을 부어주시면 죄의 껍질을 완전하게 벗게 되고 죄과가 완전하게 떠나가게 하신다.
슥4:6절에 스가랴 선지자는 인간의 힘으로도 안되고 능으로도 안되지만 신으로는 된다고 하였고
눅18:27절에서는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고 하였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사람이 해야 하고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이 해주신다.
우리가 스스로 자제하고 고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힘으로 해야 하는데 이것마저도 하지 않고 도리어 더욱 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단1:20절에 다니엘의 머리에 거룩한 신들의 영이 오니 지혜와 총명이 열배나 뛰어나게 되었고 신이 온 증거가 머리에서부터 나타났다.
우리에게 여호와의 신이 머리에 오면 지혜와 총명, 명철이 오게 되면서 머리가 개조, 변화되고 모든 혼잡이 떠나간다.
쓸데없는 생각이 가득한 사람은 쓸데없는 생활로 시간을 허비하게 만들지만 여호와의 신이 오면서 혼잡이 떠나가면 그 생활이 바로 된다.
거룩한 신들의 영을 받은 다니엘에게는 쓸데없는 생각이 없었기에 이방 바벨론에 살아도 쓸데없는 생활을 살지 않았고 훗날 사람들이 다니엘의 흠과 티를 찾으려고 해도 쓸데없는 생활을 전혀 살지 않은 다니엘에게서 조금의 흠과 티도 찾을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쓸데없는 것들은 떠나가고 복음을 위해서 사람 살리기 위하여 유익된 것들이 머리에 자리 잡아야 한다.
이런 사람에게는 고전2:10-11절같이 통달하는 영이 오게 되어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는데 이르게 된다.
통달의 영이 오면서 영계통달, 말씀통달, 진리통달 모든 것을 통달하게 된다.
왕하2:9, 15절을 보면 엘리야, 엘리사 시대에 특별히 영감이 있었는데 그 이후로는 영감에 관한 말씀이 더 이상 없었다.
그런데 마지막 때에 다시 한번 영감을 주시는데 계1:10, 계4:2절에 사도요한이 성령의 감동을 통하여 영감으로 요한계시록을 기록하였으니 영감은 곧 성령의 감동인 것이다.
머리에 여호와의 신이 와서 그 신으로 감동을 받으면 영감이 생긴다.
히6장에 은사를 받았더라도 타락할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영감을 받은 사람은 타락할 수가 없게 된다.
앞으로는 영감시대가 열리게 되는데 기도도 영감으로 하고, 설교도 영감으로 하고, 상담도 영감으로 하고, 강의도 영감으로 하고, 생활도 영감따라 하는 시대가 오게 된다.
벧후1:20-21절에서 베드로 사도는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이기에 사사로이 풀어서는 안되고 성령의 감동 속에 풀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
2) 눈과 귀를 열어주신다. (계3:18, 사50:4-5, 사11:3, 사33:15)계3:18 안약과 같은 예언의 말씀으로 시대를 보는 안목이 열려져야 한다.
사50:4-5 귀를 열어주셔서 시대적인 말씀을 학자같이 알아듣게 하신다.
사11:3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치 않고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치 않는다.
사33:15 귀를 막아 피 흘리려는 꾀를 듣지 아니하는 자, 눈을 감아 악을 보지 아니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이사야 선지자는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사람은 남을 해하려는 말을 듣지 않는 귀가 되어야 하고 눈은 악을 보지 않는 눈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눈이 범죄케 하거든 눈을 빼어버리라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가는 것보다 한 눈을 가지고 천국에 가는 것이 낫다고 하셨다.
이는 진짜로 눈을 빼라는 것이 아니라 안목의 정욕을 죽이라는 것이다.
정을 통하는 눈이나 안목의 정욕은 모두 없이하고 말씀이 보이는 눈, 자신이 보이는 눈,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치 않는 눈이 되어야 한다.
3) 입에 말씀을 주신다. (사50:4-5, 사59:21, 렘1:9, 사50:4-5)사50:4-5 학자의 혀를 주신다.
사59:21 우리의 입에 여호와의 말씀을 두시고 영영히 떠나지 않게 하신다.
렘1:9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머리위에 신이 오고 영감이 온 사람의 말과 오지 않은 사람의 말은 그 근본이 다른데
영감이 온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고 영감이 없는 사람은 자기 생각을 말한다.
그러므로 영감있는 종의 설교와 영감없는 종의 설교가 다르며 영감있는 종의 설교와 영감없는 종의 설교가 다른 것을 분별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이 복이다.
마지막 때에 하나님이 쓰실 종에게는 입에 성결을 주시니 자기 입을 자기가 잘 간수해야 하는데 쓸데없는 말, 남과 다투는 말, 남에게 상처주는 말, 음담패설 등을 피해가야 하며 이런 말은 안하는 것이 현명하다.
4) 이마에 하나님의 인을 쳐주신다. (계7:1-4, 겔9:3-6, 계14:1)겔9:3-6절에 이마에 표를 해주시고 피해받지 않게 하여주신다고 했고
계7:1-4절에서는 하나님의 인을 이마에 쳐주시는데 그 수가 십사만사천이라고 하였다.
계14:1절에 어린 양이 시온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다고 하였다.
즉, 하나님의 인을 이마에 쳐주시는 것은 말3:16-17절같이 하나님이 이마에 인을 쳐서 표하므로 그 사람은 특별한 소유가 되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그 분의 소유가 되지 못하여 자신의 생각대로 마음대로 사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온전한 소유가 되면 생각도 그 분의 생각, 마음도 생활도 체질도 그 분이 원하는 생활을 살게 되지만 아직 하나님의 온전한 소유가 되지 못하므로 오늘도 우리는 자신을 위한 삶을 산 것이다.
할례의 인이나 성령의 인은 예정된 수가 없지만 하나님의 인은 십사만 사천으로 예정되어 있다.
이 종들이 나오는데 하나님의 인을 이마에 맞음으로 인하여서 생각의 변화, 정신의 변화, 사상의 변화, 혼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을 맞을 사람은 머리에서 혼잡한 것, 혼탁한 것, 복잡한 것, 잘못된 것들이 모두 떠나가고 어린 양 예수님의 생각대로 살게 된다.
자신이 자꾸 그 분의 생각으로 변화되어 가는지 아니면 안좋은 생각으로 변질되어 가는지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결론 : 계14:2-5절 같은 생활을 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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