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시록 제13장 : 수정통치 시대의 형편.
< 5 절 >
또 짐승이 큰 말과 참람된 말 하는 입을 받고
짐승이란 무신론 공산주의를 말한 것이고 참람된 말하는 입이란 1절에서도 말씀하고 있는데 하나님을 훼방하는 역사다.
또 마흔 두 달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짐승이 큰 말과 참람된 말을 하며 용의 능력을 받아 수정통치 시대를 이룬다 하여도 그 기간은 마흔두 달로 정해져 있다.
단7:25절에서는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라고 하였고
계11:2절에서는 마흔 두 달 이라고 하였고
계12:6, 계12:14절에서 일천 이백 육십일,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라고 한 것은 예비처로 들어간 사람들의 입장에서 삼년 반을 말한 것으로 짐승이 수정통치 시대를 지배하는 기간 동안 인 맞은 종의 인도를 따라 예비처로 들어간 사람들에게는 보호받는 기간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는 창세 이후로 지금까지 무슨 일이든 예정된 기간이 있는데 하나님의 예정대로 진행되어 가는 일에 순리에 따라 적응해야 한다.
히브리민족이 애굽에 종살이 하는 기간은 430년, 바벨론 포로생활은 70년이었고 그 기간이 차니 하나님이 전능하신 방법으로 압박과 고난 가운데 자유함을 주셨다.
우리에게도 예정된 기간이 찬 사람에게는 자유함을 주신다.
< 6 절 >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훼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거하는 자들을 훼방하더라.
수정통치 시대는 신앙인의 입장에서 보면 저주받은 때요, 수정통치 시대에 들어가는 사람은 모두 버림받은 사람인 것이다.
마24:40-41절에 두 남자가 밭을 갈고 있는데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하며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는데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한다고 하였다.
마25:1-13절에도 기름등불 없는 미련한 다섯 처녀는 버리신다고 하였다.
마지막 때에 버림받는 사람도 나오는 것이다.
< 7 절 >
또 권세를 받아
계13:2절에서 이미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준 것을 말씀하였는데 여기서 말하는 권세는 계13:15절같이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말하게 하고 우상에게 경배하게 하는 권세다.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짐승이 다스리는 수정통치 시대에도 성도가 있지만 용의 공격으로 용의 지배아래 들어가게 되는 성도들이며 짐승에게 다 굴복되어 우상에게 경배하고 짐승표 6.6.6.을 받게 된다.
계12:17절에서는 여자의 남은 자손이라고 하였는데 계12:6, 계12:13-16절같이 예비처로 들어가지 못하고 남은 자손이다.
이 성도들은 믿기는 믿었지만 잘 못 믿은 사람이며 마태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 친히 버림받는 자가 나온다고 말씀하셨다.
단7:25절에서는 성도들을 짐승의 손에 붙인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게 한다고 하였고
계11:2절에서는 거룩한 성같이 교회는 교회지만 계17:1-3절에 음녀교회, 버림받은 교회를 마흔 두 달 동안 짐승에게 짓밟히게 된다고 하였다.
히6:4-5절같이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의 참예한바 되었다가 타락하여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게 된 자들이며
딤전4:1-2절같이 예수를 믿다가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아 양심에 화인을 맞고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다.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마흔두 달 동안 짐승이 전 세계를 지배하게 된다는 것이다.
계13장을 배우므로 이러한 시대가 온다는 것을 알아야 하지만 이 시대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
수정통치 시대를 통과해야 한다고 말씀하는 분들도 있지만 수정통치 시대는 통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공중으로 들림 받거나 아니면 예비처로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 8 절 >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우리가 다른 신들을 다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받아들이며 세례를 받으면 이름이 생명책에 녹명되게 된다.
그러나 출32:32-33절에서 하나님 앞에 범죄하면 하나님의 책에서 이름을 지울 수도 있다고 말씀하고 있다고 하였고
계3:5절에서 신앙의 정절을 지키면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않는다고 하였으니 우리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어야 한다.
계20:12, 계21:27절에서도 생명책에 관해 말씀하고 있다.
생명책에 이름이 있는 사람은 수정통치 시대가 오기 전에 하나님이 사는 길로 인도하시는데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았거나 아니면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나 지워진 사람들은 수정통치 시대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 9 절 >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찌어다
귀가 없는 사람이 없는데 여기서 귀가 있는 자라고 한 것은 말씀을 들을 줄 아는 귀가 있는 자를 말씀한 것이다.
사50:4-6절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여호와가 귀를 깨우치사 학자같이 알아듣는 학자의 귀가 되게 하신다고 하였고
사33:15절에서는 귀를 막아 피 흘리려는 꾀를 듣지 말라고 하였다.
계1:3절에서 사도요한은 이 예언의 말씀을 듣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였고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서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하며 거듭 일곱 번을 말씀하고 있다.
자신이 은혜가 충만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잘 들리고 사람의 소리는 안 들리는데 은혜가 떨어지면 하나님의 말씀은 잘 안들리고 사람의 말이 잘 들린다.
사람의 말에 상처받고 사람의 말을 의식하고 사람의 말에 번민하고 근심하면 인본주의로 가게 되고 반대로 하나님이 귀를 열어서 하나님의 말씀이 잘 들려지게 하시면 신본주의로 가게 되는 것이다.
구약에 선지자들이나 신약에 사도들이 사람의 말을 의식했다면 여호와의 말씀을 전할 수 없고 복음을 전할 수 없다.
요나가 다시스로 도망간 것은 사람을 의식했기 때문이며 하나님이 스올의 뱃속에 삼일을 지내게 하시니 다시 하나님을 의식하여 니느웨 성으로 향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고난을 주시고 안 좋은 일을 주시는 것은 요나 같은 행동을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말씀을 계속해서 들으면 마음의 변화, 생각의 변화, 말의 변화, 생활의 변화, 행동의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그러나 사람의 안 좋은 말을 계속해서 들으면 그 심성이 나빠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