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가 주시는 자유함. (슥5:5-9)
국가에서 주는 자유나 헌법이 보장하는 자유나 자신의 양심에 인한 자유가 아니라 세계를 지배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자유함을 받아야 한다.
여호와가 주시는 자유함은 우리의 조그만 유익을 위한 자유함이 아니라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자유함이며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할 수도 엄청난 자유함이다.
본문에서 한 여인이 에바 속에 갇히고 악에 눌려 있게 됐지만 두 여인은 에바 속에서 벗어나 자유함을 얻었으니 자유함은 인간이 원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예정가운데 주시고자 해야 한다.
여자는 교회를 말씀한 것으로 자유함을 주시는 교회와 자유함을 주시지 않는 교회가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 에바 속에서 나오게 하시는 자유함.
본문에 두 가지 상황이 있는데
한 여인은 에바 가운데 앉아있었으니 이는 에바 속에 정착할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고
두 여인은 에바에서 나왔으니 이들은 에바 속에 정착할 마음이 없었던 것이다.
두 여인에게는 자유함을 얻고자 하는 마음, 자유함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즉, 인간이 만들어 놓은 법도나 제도, 굴레, 조직, 교권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 여인은 에바 속에서 나오고자 하는 간절함이 없이 인간이 만들어 놓은 굴레에 기대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기에 한 여인이 에바 가운데 앉았느니라 하는 동시에 둥근 납조각, 악으로 입구를 막아 버린 것이다.
대부분 많은 사람들은 현실에 안주하고 인간으로 방패를 삼고 교권으로 방패를 삼아서 무사안일주의로 살아가려고 한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데 누구에게도 안 좋은 말을 안 듣고 가려고 하는 안주함이 여호와가 주시는 자유함을 받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요인이 되는 것이다.
한 여인에게는 에바 가운데 앉을 마음을 주셨고 두 여인에게는 에바 속에서 나오고자 하는 마음을 주셨다.
자유함을 주실 사람에게 주시는 마음과 자유함을 주지 않을 사람에게 주시는 마음이 다르기에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이 어떤 마음을 주시느냐가 중요하다.
2) 악에 눌리지 않게 하시는 자유함.
한 여인은 악에 눌리게 하셨고 두 여인은 악에 눌리지 않게 하셨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유함을 주시려고 하는 기회와 시간을 놓쳐서는 안 된다.
한 여인이 에바 가운데 앉은 동시에 에바 아구리 위에 납 조각을 덮어 자유함을 얻을 기회를 놓쳤다.
그러나 두 여인은 에바에서 바로 나오므로 악이 덮이기 전에 자유함을 얻은 것이다.
앉고 나오는 것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인데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시는지 보시는 것이다.
3) 임마누엘 날개 역사로 주신 자유함. (사8:8)
두 여인이 에바에서 나올 수 있었던 것은 학의 날개 같은 날개, 즉 임마누엘 날개 역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8:8절에 임마누엘의 날개를 펴신다고 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역사를 시작하신다는 것이다.
사31:5절에서는 새가 날개치며 새끼를 보호함같이 임마누엘 날개로 안전하게 지키신다고 하였으니 자유함을 주시되 안전함도 보장해 주신다는 것이다.
4) 날개바람으로 주시는 자유함. (행2:1-4)
성경에서 바람은 전쟁의 바람과 성령의 바람 두 가지고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바람은 성령의 바람을 말씀한 것이다.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의 바람이 불었는데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임마누엘 역사 속에 성령의 바람으로 자유함을 주신다.
5) 주께서 보장해 주시는 자유함. (사33:16)
자유함을 얻었는데 순식간에 깨져버린다면 안 받은 것만 못하기에 여호와가 주시는 자유함을 주께서 보장해 주셔야 한다.
사33:16절에서는 견고한 바위가 보장해 주신다고 하였는데
고전10:4절에 반석은 곧 그리스도 주시라고 하였다.
견고한 바위 예수님의 보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