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도록 충성하는 교회가 되라. (계2:8-11)
충성에는 국가에 대한 충성, 조직에 대한 충성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본문에서 마지막 때에 예표가 되는 서머나 교회에 죽도록 충성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서머나 교회는 현실적으로 환난과 궁핍을 겪고 있는 교회인데 주님은 이 교회에 죽도록 충성하라고 요구하시며 그리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주신다고 하셨고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게 하신다고 하셨다.
1) 모세같이 예수님같이 충성하라. (히3:1-6)
성경 가운데 가장 충성한 분이 구약에는 모세, 신약에는 예수님이다.
모세는 사십년 동안 애굽의 왕자로 살다가 사십년은 미디안 광야 이드로의 집에서 양을 치며 지냈고, 나머지 사십년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히브리민족을 애굽에서 이끌어내는 지도자로 쓰임 받았으니 모세는 자기 민족과 고난 받는 것을 즐거움으로 알았다고 하였다.
하나님은 그러한 모세에게 지팡이에 역사를 주셨고 그가 말하는 대로 재앙이 내리게 하셨고 홍해가 갈라지게 하셨고 하늘에서 만나가 내리게 하셨으며 반석에서 물이 나게 하셨다.
눅22:37-44절에서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의 문제를 놓고 힘쓰고 애쓰고 더욱 간절히 기도하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었고 천사가 예수님의 기도를 도왔다.
예수님은 이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십자가를 지고 돌아가시므로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고 돌아가셨다.
히브리서에서 모세는 집맡은 사환으로 충성하였고 예수님은 그 집을 맡은 아들로 충성했다고 말씀하고 있으니 이 두 분의 모습이 충성의 예표다.
2) 달란트 받은 자같이 충성하라. (마25:14-30)
주인이 타국에 가면서 세 명의 종에게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주고 아무런 지시 없이 떠났는데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장사하여 달란트를 더 남겼지만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그것을 땅에 파묻어 두었다가 주인이 올 때에 그것을 그대로 가져왔다.
주인은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받아 달란트를 더 남겨온 종들에게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찌어다”하고 칭찬하였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자에게는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책망하시고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고 하셨다.
한 달란트 받은 자가 그것을 땅에 파묻고 주인에게 그걸 다시 꺼내와 궤변을 늘어놓은 것은 그가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지만 그가 만약 한 달란트 받은 것으로 장사하여 한 달란트를 더 남겼다면 나머지 두 사람과 똑같은 칭찬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주의 일을 할 때에 인간의 감정을 앞세워 한다면 스스로 무너지게 되지만 은혜 속에 성령의 감동 속에 충성된 마음으로 한다면 더 큰 축복을 받게 된다.
3) 서머나 교회같이 충성하라. ()
서머나 교회가 현실로는 환난과 궁핍을 겪고 있는데 주님은 서머나 교회에 네가 겪고 있는 환난과 궁핍을 알고 있지만 실상은 부요한 자라고 말씀하셨다.
약2:5절같이 믿음으로 부요한 교회가 되어
히11:1절같이 믿음으로 바라는 것을 실상으로 이루어가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이 교회가 말씀으로 부요해지고, 사랑으로 부요해지고, 은혜로 부요해지고, 지혜로 부요해지고, 물질까지 부요해지면 현실 속에 겪고 있는 환난과 궁핍 또한 물러가게 된다.
그러나 일곱 번째 교회인 라오디게아 교회는 스스로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자부하며 외적으로 부요한 교회지만 주님은 그 교회에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교회라고 책망하셨다.
즉, 교회의 외형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믿음의 부요함이 있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영적인 축복을 받아 부요한 교회가 되었다면 인색한 교회가 되어서는 안 되고 받은 것을 나누어 줄 수 있는 넉넉한 교회가 되어야 한다.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은 충성할 수 없고, 희생을 두려워한다면 충성할 수 없다.
그러므로 모세같이 예수님같이 충성하고, 달란트 받은 자같이 충성하고, 서머나 교회같이 충성해야 한다.
결론 : 주님이 사랑하시고 인정하시는 교회가 되자.